아침마다 머리를 빗을 때면 삐죽이 올라오는 흰머리.
작년까지만 해도 한 달에 한번정도 큰딸에게 머리를 내맡기고 나면
남들이 흰머리가 없다고 말할 정도였는데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뽑아도 뽑아도 쉼없이 올라오는 흰머리를 그 동안 뽑아주던 큰딸도
"엄마, 이러다 대머리 되면 안되니 이젠 염색하세요"라며 뽑아줄 생각도 않는다.
둘째딸에게 몇 번 사정(?)해 봐도 들은 척도 않고.....
아침마다 늘어만 가는 흰머리를 보며
백발이 성성할 날이 곧 다가올 듯 불안하기까지 하다.
드디어 며칠전엔가 생전 제엄마 머리에는 관심도 없던 막둥이 아들이
"엄마, 흰머리 뽑아줄게요" 했다.
어쩌나 보려고 머리를 내맡기면서
"너, 엄마가 할머니 같아질까 봐 흰머리 뽑아주는거니?"하고 말을 걸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도리질을 한다.
사실이면서.
언젠가 동서가 말했다.
자기 위층에 사는 엄마가 사십이 넘어서야 귀한 아들을 얻었는데
애지중지 키운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식날 졸업식장에도 못 갔다고.
아빠엄마가 할아버지 할머니 같아 친구들 보기에 창피하다고 말했다는 그 아들.
그 말을 하며 그 엄마가 울더라고 말했었다.
며칠전 TV에서는 늦둥이를 둔 부모들의 사연이 소개되기도 했다.
늦둥이를 두고 싶어서가 아니라 결혼후 계속 아이가 생기지 않다가
늦게 서야 겨우 생긴 때문이라는 그 사람들.
그중 오십이 넘었다는 한 남자는 결혼후 이십 년이 훨씬 넘도록 아이가 없다가
이제 겨우 두 살 난 딸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동네에 데리고 나가면 다들 할아버진줄 안다고 말하는 그 아버지는
딸을 가슴에 안고 너무나 행복에 겨운 모습이었다.
그 아이가 중학교 입학할 즈음이면 환갑이 훨씬 넘을 그 사람에 비할까마는
우리 남편도 흰머리로 따진다면 할아버지가 된지 옛날이다.
원래도 흰머리가 드문드문 섞였었는데 개인사업을 시작한 뒤는
하루가 다르게 흰머리가 늘어만 갔다.
오죽했으면 아이들이 아빠는 흰머리보다 검은머리 뽑는 게 빠르겠다고 했을까.
더구나 신경을 써서인지 머리까지 빠져 대머리 아저씨가 되어 가는 남편.
그나마 흰머리라도 빠지지 않고 있어주어 다행이라는 남편.
결혼후 한참동안은 어딜 가도 사람들이 동갑인 우리 중 나를 누나보듯이 했다.
남편은 워낙 동안이라 늙을 것 같지 않았는데 세월이, 인생이 가만두질 않았다.
한동안 어딜 가도 '설마 나보다야 아래로 보진 않겠지..' 라고 위안을 삼았는데
이젠 다 틀린 게 아닐까 싶다.
가만... 막내가 스무 살이면 우린?
쉰 여섯이다.
이제 보니 별로 많은 나이도 아니다.
어디 지금부터라도 부부끼리 서로 흰머리 염색해주며 금실을 자랑해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