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女子)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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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보다 더 반짝이는 그대

♡ 엄마(친정엄마)♡

작은딸과 새 교복

bell-10 2001. 6. 23. 09:30
늘 언니 옷을 물려 입던 작은딸이 드디어 새 옷을 장만했다.
어릴 때는 물론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라 교복까지 그대로 물려 입었는데
그만 고등학교 하복이 바뀐 중대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언젠가 칼럼(47호)에서 이야기했듯이 교복치마의 동. 하복 무늬가 똑같아
천을 만져보지 않고는 동복인지 하복인지 구별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큰딸이 엄청나게 짧아진 하복치마 대신
동복치마를 며칠 입고 다녀도 전혀 눈치를 못 챈 것이었다.
두 번씩이나 사야했던 그 말썽스런 하복이 올해 완전히 새롭게 바뀌었다.

메이커 교복 값이 거품이라는 기사가 심심찮게 들린다.
자세히 알아보면 꼭 메이커 교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메이커 아닌 교복도 있다.
거품이 많이 빠졌다는 메이커 하복 한 벌이 8만원 정도면 비메이커는 5만원이면 된다.

하복을 입기 일주일 전쯤 일요일 낮에 작은딸과 비메이커 교복집을 찾아갔다.
물론 집에서 메이커 교복이 아니어도 좋다는 딸아이의 허락을 얻은 터였다.
사실 여태 새 옷 한번 못 입어본 작은딸로서는
메이커가 아니면 어떠랴, 새 옷인데.

어느 아파트 상가 지하에 위치해 있던 그 교복집은 완전히 인산인해였다.
교복을 사러온 중. 고등학교 학생과 엄마들로 북새통이었고
질서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조금 사태를 지켜보다가 용감하게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겨우 우리 아이의 학교 이름을 말했더니
이것저것 찾아보던 직원 말이 맞는 사이즈가 없어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줄자를 들고 다니는 직원을 찾아 아이의 사이즈를 재달라고 했지만
정신없이 바쁜 그 직원은 여기저기서 아우성인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불려 다니기만 했다.
가슴둘레 재 보려다가 저리로 불려가고, 허리둘레 재려다가 이리로 불려가고,,,,
아무튼 교복 맞추는 일이 무슨 인내심의 시험장 같았다.

한 삼십여분 말없이 기다리던 딸의 인상이 점점 구겨졌다.
드디어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듯 나를 끌며 제발 다른 데 가자고 졸랐다.
나 역시 속이 부글거리던 참이라 함께 나와 버스를 타고
또다시 찾아간 데가 역시 비메이커 교복집.
그 집은 다행히 사람은 적었지만
우리 딸 학교가 이번에 교복을 바꾸는 바람에 아예 준비조차 못했단다.
하는 수 없어 백화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곳 역시 복잡했지만 워낙 여러 메이커들이 있는 덕에
어렵잖게 딱 맞는 교복을 구할 수 있었다.
그것도 이 메이커 저 메이커 골라가며.
'그래, 그 동안 한번도 새 옷 한번 못 사줬는데 이참에 잘됐다,
비싸봤자 삼만 원이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모두 블라우스를 두벌 이상 사는데 우선 하나만 샀다.
'아까 가봤던 그 교복집이 내일은 한가하겠지,,
아직 입을 날짜가 여유 있으니 다시 가서 하나 더 사야지,,,'

엄마의 이런 꼼수를 아는지 모르는지 딸아이는 그저 싱글벙글 이었다.
집에 와서 새 교복을 입어보고 또 입어보고 하는 딸아이.
'저리도 기뻐하는 것을,,,,,'
거울을 보고 또 보는 아이를 바라보는 내 가슴이 촉촉이 젖어왔다.

다음날 월요일이라 한가한 비메이커 교복집에
어제 산 교복 상의를 들고 다시 찾아갔다.
똑같이 맞추었는데 며칠 후 찾아와서 보니 역시 싼 게 비지떡이란 생각이 들었다.
천도 틀리지만 칼라에 댄 바이어스 굵기도 투박하고
단추가 잘못 달렸는지 옷 모양도 뒤틀려 보였다.

싼 게 그러려니 하고 입혔는데 딱 하루만에 겨드랑이 부분이 미어졌다.
결국은 다시 가서 못마땅했던 부분을 몽땅 수선해왔다.
몇 번씩 오고간 교통비뿐 아니라 소요된 시간을 생각하면
결국 싼 게 아닌 셈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한바탕 소동 끝에 난생 처음 새 교복을 장만한 작은딸.
고등학교시절 삼년 내내 하복 입을 동안만큼은 그 누구보다 행복할 아이.
오늘도 그 하복을 입고 씩씩하게 등교한 작은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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