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女子)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기억의 서랍에 차곡차곡 담아봅니다

별보다 더 반짝이는 그대

♡ 엄마(친정엄마)♡

콜 택 시

bell-10 2001. 4. 29. 18:31


살아오면서 여태까지 콜택시를 불러본 적도, 타본 적도 없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아침 일찍 아무 도움 없이 일어난 적이 일년에 한 두 번도 없을 정도로
아침잠이 많은 나는 매일아침 기상을 휴대폰의 알람에 의지한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자기가 깨어줄텐데 시끄럽게 한다고 잔소리다.

나와는 달리 노인네들처럼 아침잠이 없어 일찍 일어나는 남편일지라도
어쩌다 많이 취한 다음날은 간혹 늦게 일어나기도 해
무조건 믿고 의지하기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그러다 보니 항상 휴대폰 알람을 맞춰 머리맡에 두고서야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게된다.

그래도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기보다는
아침잠이 적은 남편의 깨움에 의해 일어나는 때가 대부분이다.
휴대폰 밧데리가 다 되어 미처 알람이 울리지 못할 때에는
그런 남편의 깨움이 얼마나 요긴한지 모른다.

그런 남편이 출장을 갔다.
그날 저녁 평소와 마찬가지로 알람을 맞춘 휴대폰을 머리맡에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랜만에 막둥이 아들을 남편대신 끌어안고 꿈나라로 훨훨,,,,,,

갑자기 어디선가 들리는 전화벨소리.
비몽사몽간에 전화를 받았더니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전화를 받으면서 실눈을 떠보니 사위가 대낮처럼 밝다.
그때까지도 사태짐작을 못한 나.
남편: "혜지 학교 갔냐?"
나: "지금 몇 신데,,,"
남편: "7시 35분!"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잠이 확 깨는 순간이었다.
얼른 전화를 끊고는 휴대폰을 찾으니 깜깜소식이다.
밤새 밧데리가 다 닳은 것이다.
부랴부랴 아이를 깨웠다.
8시까지 등교라 최소한 집에서 7시 20분에는 나가야 여유 있게 학교를 가는데
지금까지 자고 있으니 큰일이었다.

아침밥도 먹일 시간이 없다.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은 십여분이 채 안 되는 거리지만 항상 늦는 버스다.
아이가 옷을 입고 준비할 동안 나는 아이의 눈치만 살피느라 어쩔 줄을 몰랐다.
이래도 에미라고,,,, 정말 한심하고 또 한심한 에미.
그러다 번쩍,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맞다, 콜택시를 부르자!'

언젠가 택시를 타고 가는데 기사아저씨가 무전연락을 주고받는 걸 들을 수 있었다.
무전기 저쪽에서는 00지점에 제일 가까이 있는 택시를 찾으며
기사들과 수시로 연락하고 있었다.
그때 콜택시의 역할을 보게 되었고
혹시나 하고 연락처를 받아두었던 기억이 났다.

싱크대 문짝 안쪽에 닥지닥지 붙어있는 광고스티커.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다.
이곳 위치를 말하니 전화번호를 되묻는다.
'거짓인가 확인하려나 보다'하고 전화번호를 가르쳐주고 기다리니
마음은 급한데 도통 연락이 없다.

할 수 없어 아이와 함께 나가서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후다닥거리는 난리 통에 일어날 시간이 아닌데도 일어난 막내에게
'전화 오면 나가서 기다린다고 해라'는 말을 남기고 아파트 앞 큰길로 나갔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택시.
(기다린 건 사실 몇 분이었지만 내게는 여삼추 같은 시간이었다.)
아이는 오히려 지각 한번해도 괜찮다며 여유 있는 반응을 보이는데
평소 성적보다는 생활태도를 더 중시 여겨온 나는 도저히 느긋해지지가 않았다.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마침 빈 택시가 한 대 오기에 잡아 아이를 태워보내고는
얼른 콜을 취소하려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막내 말이 방금 택시가 온다며 전화가 왔단다.
취소한다는 전화를 했더니 상대방에서 짜증을 냈다.
백배 미안하다고 사죄를 하고서는 전화를 끊었다.
얼른 베란다 창밖으로 내려다보니 현관 바로 앞에 택시가 대기 중이었다.
조금만 일찍 오지,,,,,,

내려가서 미안하다고 할까? 모른 체 있을까?
몇 번 망설이다 다시 내다보니 가버리고 없었다.
휴,,,, 저절로 나오는 한숨.
미안한 마음에 나라도 가까운데 갔다올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렇다고 세수도 안한 채 드라이버를 즐길 수는 없잖은가,,,,

다행히 그날 아이는 지각처리 되지 않았다고 했다.
평소보다 등교시간이 10분 늦어져 무사했다고.
그리고 지각하면 운동장 몇 바퀴 돌고 이름 적히면 된단다.
자기네 반에는 열번도 넘게 지각한 아이도 있다며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무엇이든 한번은 어려워도 그 한번이 열번 되기는 쉽다.
그러니 한번쯤 하는 생각은 절대 말라며 아이의 느슨한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가 지각은 면해서 다행이었지만
콜택시 아저씨의 헛걸음이 자꾸 생각나 내내 마음이 무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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