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女子)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기억의 서랍에 차곡차곡 담아봅니다

별보다 더 반짝이는 그대

♡ 엄마(친정엄마)♡

작은딸 생일날에

bell-10 2001. 8. 26. 09:08
"오늘 저녁은 엄마가 쏜다~~"
작은딸 생일날 엄마가 생전 하지 않던 소리를 하니
짠순이 에미가 웬일인가 하고 아이들이 의아하게 쳐다본다.

처서가 생일인 작은딸을 낳던 그해 얼마나 더웠던지 산후 한달 이상이나 더 더워서
아이와 엄마가 땀띠를 뒤집어썼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땀띠의 영향이었던지 지금까지 아토피 피부로 고생하는 작은딸을 볼 때마다
에미의 부주의로 인한 괜한 고생인 것 같아 항상 안쓰러운 마음이다.

아토피 피부를 가진 애들은 대부분 그 가려움 때문에 성격까지 짜증스럽게 변한다는데
그저 쉴새 없이 긁적긁적 거릴 뿐 착하게 커준 것만도 너무나 고마운 아이.
지금 고1이라 외모에 관심이 많을 때인데도 한번도 엄마를 원망해 본적이 없는 아이다.

그 동안 우리 집 식구들 생일 상에 무슨 일이 있어도 빠지지 않는 두 가지 음식.
바로 미역국과 잡채.
생일날 미역국을 못 얻어먹으면 人福이 없다는 시어머님의 말씀을 받자와
절대 생략하는 법이 없는 미역국과 그 다음 명이 길 라는 의미의 잡채.

여태까지는 이 두 가지 음식 외에도 호박전이나 하다 못해 생선이라도
한 도막 튀겼었는데 드디어 그 잡채마저 생략해버린 사태가 발발했다.
아이 셋 중 유난히 더 마음이 가는 작은딸의 생일날 아침인데도
겨우 미역국 하나만 달랑 끓여주고 말았다.
다름 아닌 직장여성이라는 핑계로.

아침은 식구들이 한꺼번에 먹지를 않아 대충 해결해도 저녁에는 꼭 생일을 챙겼었는데
이날은 저녁도 편한 백성이 되어보기로 했다.
사무실에서 내내 저녁은 어떻게 하나 궁리 끝에
집에 가서 더운데 이것저것 장만하며 고생하느니
오랜만에 아이들과 오붓하게 외식이나 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마침 남편도 늦다고 했다.

퇴근시간 맞춰 집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세 아이들.
처녀 같은 큰딸, 아직은 앳된 중학생이란 소릴 듣는 자그마한 작은딸,
꼬마 티를 확연히 벗어난 막둥이 아들까지.....
신나게 앞서 걸어가는 세아이의 뒷모습에 자식을 쳐다만 봐도 배부르다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런 심정이구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뿌듯했다.
에구... 나도 별 볼일 없는 팔불출.

엄마가 쏜다는 말에 무얼 먹을까 고민하던 아이들이 결정한 것은 샤브샤브 칼국수.
큰딸이 지 남자친구랑 가봤다는 그 식당은 넓고 깨끗하고 맛도 있었다.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모습이 너무 이뻐 아이들 접시에만 자꾸 고기를 건져주니
그래도 맏이랍시고 큰딸이 '엄마도 드세요' 한마디 해준다.
저만 아는 아이라 참 미울 때도 많았는데 잠시 콧등이 시큰해진다.

직장 나간 이후로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반찬 한가지 정성껏 못해 먹여 늘 미안했는데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니 더 미안하다.

남편이 빠져 아쉬웠지만 샤브샤브에다 칼국수에다 볶은 밥까지 깡그리 먹어치운 우리 넷은
막둥이가 엄마 몰래 자주 간다는 오락실을 찾았다.
펌프를 위시해 오락도 몇 판 해본 아이들이 더하고 싶어했지만 서둘러 오락실을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 아이스크림도 마음껏 고르라 했더니
'우리 엄마 오늘 너무 과용하시네'하며 마냥 즐거워하는 아이들.

비록 지 아빠도 빠지고 케이크도 빠진 생일이었지만
나름대로 즐거운 아이들의 얼굴에서 작은 행복감을 느껴본 시간이었다.
혜지야, 생일 제대로 못 챙겨 줘 미안, 그리고 얘들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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