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핑계로 아들 녀석에게 도통 관심 없는 에미가 된 요즘.
바쁜 아침시간에 잠깐, 다 늦은 밤에 잠깐, 이렇게 하루 두 번
얼굴 마주치는 게 고작이니 새 학년에 올라간 녀석이 어떻게
학교생활을 하는지 친구들은 누구를 만나는지 모르는 한심한 에미다.
어쩌다 아주 가끔 아들의 책상을 살펴볼 때도 있지만 늘 지저분하니
치우라는 잔소리밖에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아침 아들이 나가고 난 책상 위에서 하얗게 접혀있는
종이 한 장을 보게 되었다.
학원에서 친 쪽지시험인가 하고 펴봤더니 학교에서 조사한 설문지였다.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에 관한 설문지였는데
그저 그런 내용이었다.
정직한 사람인가,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생각 하는가,
공부는 열심히 하는가,, 등등
흔히 물어볼 수 있는 내용이었고 동그라미 세모 가위표로 답을 표시했는데
대부분 내가 아는 아들의 모습이 그대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뒷면에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가족이 생각하는 자신의 장래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것인데 이런 내용이다.
아빠- 운동에 소질 있으니 그쪽으로,,,
엄마- 뭘 만드는데 소질이 있으니 그쪽으로,,,
글쎄, 남편과 내가 아이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몰라도
아무튼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마지막 형제자매들 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모든 게 잘 안되면 너는 라면을 잘 끓이니 라면가게나 차려라.”
참 기가 막히는 이야기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마에게 거의 방치당하는 수준이어선지 아들 녀석은 라면을 꽤 잘 끓인다.
누나들이 가끔 라면을 끓여달라고 시키면 가만히 앉아 동생한테 시킨다고
내가 잔소리를 하지만 녀석은 알았다며 흔쾌히 끓여주는 편이다.
사촌형이 고등학교 시절 조리사 자격증을 여러 개 딴 덕에 대학도
쉽게 갔는데 우리 아들도 혹시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일요일 아침 ‘맛대맛’이란 요리 프로그램을 빠짐없이 보던데
이 녀석 혹시 요리사가 꿈은 아닐까?
만약에 아들이 그쪽으로 진로를 잡는다면 어떻게 하나?
하는 수 없다.
워낙 공부에 취미(?)가 없는 녀석이니 무슨 일이든 저 좋다면 하게 해야지.
자기가 하고 싶은 하며 사는 것 이상으로 행복한 일은 없을 테니까.
<누나졸업식에서 모자끼리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