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女子)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기억의 서랍에 차곡차곡 담아봅니다

별보다 더 반짝이는 그대

♣女子의 이름으로♣

김 대 리

bell-10 2001. 7. 22. 13:14


요즘은 스카웃 되어간 사람들이 곧바로 높은 자리에 앉기도 하지만
출근 첫날 새내기 신입사원이 대리로 승진한 사람은 나말고 또 누가 있을까?

직원이 몇 명밖에 되지 않는 친구 회사는 사장 외 모두 실장, 과장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젤 나중에 입사한 신입사원인 내가 나이가 젤 많다는 것이었다.
사장은 큰딸 친구엄마지만 나보다 네 살 아래이고
다른 직원들은 이삼십대로 더 젊으니 나이 많은 나를 부를 호칭이 마땅찮았다.

출근 첫날 점심시간.
미스 김은 말도 안되고, 김00씨도 그렇고, 아무개 아줌마도 그렇고,,,,
이런저런 궁리 끝에 짜낸 묘안이 김대리.
입사 세시간만에 곧바로 대리승진이라는 파격을 맞이했던 것이다.

친구의 이야기로는 관공서나 기업체, 개인을 상대로 주로 대외적인 일을 하기에
어딜 가도 번듯한 직함이 필요하단다.
명함에 새겨진 직함으로 자신을 나타내야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는 현실이란다.
사무실에만 있는 나는 그런 번듯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어쨌든 원님 덕에 나발 불은 셈이다.

언젠가 TV드라마에서 어느 특급호텔 입구에서부터 출입하는 손님들을
타고 다니는 차의 크고 적음으로 환대도 하고 홀대도 하는 장면을 본 일이 있다.
이렇듯 우리사회에서는 사람의 내면보다는
눈에 보이는 외양으로 그 사람의 신분을 평가하곤 한다.
그래서 좁은 땅덩어리,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굴러다니는 차의 대부분이 중형인가,,,,

아무튼 입사첫날 대리가 된 나는 막중한 사명감을 느꼈다.
왠지 신입사원이 저지를 수도 있는 실수가 있어서는 안될 것 같은.
하지만 웬걸.
이십대가 아닌 사십대 후반 아줌마의 능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오랜만에 찍어보는 스테플러는 침이 자꾸만 일그러지고,
붙이는 작업에서는 온통 손에 풀 범벅이 되어 서류가 지저분해지고,
입출금 전표를 잘못 기재해 몇 번씩 새로 써야 하고,
여러 번 보고 또 보며 확인한 서류도 막상 출력해 보면 오자가 꼭 있고,
또 그놈의 복사기는 사람을 알아보는지
나만 작업하면 종이가 끼었다는 표시를 깜박이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동과 자동의 사용법을 잘 모른 나의 불찰이었다.

아무튼 좌충우돌 혼자서 이리저리 터득하다보니 달 반이 지난 지금은 제법 일이 손에 익었다.
아침마다 나가는 일도 오래 전부터 해오던 일처럼 느껴진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버스를 타는 낯익은 얼굴도 하나둘 늘어간다.
결국 이런 과정을 거쳐 그 동안 몰랐던 또 다른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아가는 나.

여태껏 불려오던 엄마, 아내, 딸, 며느리는 물론 이젠 김대리라는 이름까지 책임져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일없는 내가 친구 회사 일까지 맡았으니 참 오지랍도 넓지.
비록 능력은 한참 모자라지만 힘닿는 데까지 도와서 회사가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친구사장아, 우리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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