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女子)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기억의 서랍에 차곡차곡 담아봅니다

별보다 더 반짝이는 그대

♡ 딸 .............. ♡

친정아버지 기일에.....

bell-10 2001. 7. 9. 20:44
오늘이 친정아버지 기일이다.
친정은 카톨릭이라 돌아가신 분의 기일에는 성당에서 추모미사를 하고
가정에서는 친지들이 함께 모여 연도라는 추모기도를 한다.
친정에서 모이면 작은집 식구들까지 많이 모였을 텐데
하나뿐인 아버지의 아들인 동생이 저 멀리 울진에서 사는 관계로
올해로 삼 년째 엄마가 홀로 울진까지 가셔서 기일을 지내시게 됐다.

마침 기일 하루전인 토요일 저녁에 추모미사가 있다 길래
이번엔 나도 꼭 가려는 마음으로 며칠전 기차표 예매를 해두었다.
(엄마와 함께 가려고 대구까지만 기차로 가기로 했다)

시댁제사라면 큰소리 뻥뻥 치면서 남편에게 가자고 이야기하겠지만
친정아버지 제사 라서가 아니라 길이 너무 멀어 가자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넌지시 이번에는 혼자서 다녀오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더니 흔쾌히 함께 가겠다고 했다.
얼마나 고맙고 반가웠던지,,,,

토요일 12시쯤 출발을 해서 제천, 영월, 태백을 경유하는 노선을 정했다.
영월까지는 가본 적이 있지만 태백이후는 처음이라 정말 용케도 가는 내내 잠시도 졸지 않았다.
끝내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강원도의 경치는 짙푸른 녹음의 산만 실컷 본 것뿐이었다.
가도가도 산, 나무,,,,,,,
도회지의 회색 콘크리트보다야 훨씬 낫지만 나쁘게 말해서 지겹도록 산만 봤다.
나중에 만난 동생이 한 말처럼 너무 단조로운 풍경이었다.

직선거리가 아니라 굽이굽이 산을 넘어간 길이어서 오후 여섯시 반쯤에야 동생 집에 도착했다.
미리 와 계신 엄마.
아버지 기일이 가까워오면서 얼마나 속을 끓이셨던지 얼굴이 못쓰게 된 것 같다.
지병인 심장병과 고혈압 때문에 여름나기가 남들보다 몇 배나 힘든 엄마인데
아버지 기일까지 겹쳤으니 오죽했을까.
이제 나이 예순 여덟인 울 엄마의 주름진 얼굴, 구부정한 허리,,,,,
이젠 귀도 잘 안 들리시는지 이야기하면 꼭 되물으시곤 한다.
내친구 엄마는 칠십이 넘으신 연세이셔도 아직 아줌마던데,,,,

시간이 되어 성당의 추모미사에 참석한 후 동생이 단골로 간다는 횟집에 가서 회를 먹었다.
주인이 직접 그물로 잡은 고기만 취급하는 집이라 고기 떨어지면 장사를 안 하는 집이란다.
미리 고기 있느냐고 물어봐야 하는 소문만 집이라 선지 특별히 주문한 자연산 광어의 맛이 일품이었다.
하지만 그 맛있는 회마저도 엄마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원래 회를 안 드시기도 했지만 너무 피곤하셔서 입맛이 없다고 하셨다.
입맛이 없는 게 아니라 이 맛있는 회를 못 드시는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아프신 게지,,,,,,

남매 뿐이라 우리 집과 동생집 식구들 모두 합해봐야 엄마까지 열 명인 식구.
우리 집 아이들이 모두 빠졌으니 겨우 일곱 식구.
그 적은 수의 자식들마저도 멀리 보내고 혼자서 사시는 엄마.
아버지가 떠나신 지도 벌써 14년이니 참 외로운 나날을 보내시는 엄마다.

외로우신 엄마 신걸 뻔히 알면서도 우리도 동생도 자주 엄마를 찾지 못하는 불효를 하고 산다.
아니, 동생이 집에 가겠다고 말씀드려도 '너무 멀어 고생스럽다, 차비 드는 거 아깝다,,'시며 내내 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신 다니 엄마 스스로 외로움을 만들어 가신 건 아닐까?
정말 이젠 '우리엄마는 오지 말라고 하시는 분이니 안가도 된다'는 인식을 동생이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사람은 몸이 멀면 마음도 먼 존재들이다.
싸우며 부대끼고 큰 형제들이 나중에도 더 정이 많은 법이다.
오죽하면 매 많이 맞은 자식이 효자라고 할까?
(이건 정말 요즘 하는 S 방송국의 드라마를 봐도 맞는 말인 것 같다)

울 엄마는 우리들을 키우실 때나 결혼을 시키고 나신 뒤에도 우리에게 너무 헌신적이시다.
언제나 당신 몸은 생각지 않으시고 자식만 생각하신 엄마.
드라마처럼 차라리 우리에게 조금씩 무심한 엄마, 윽박지르는 엄마였더라면
엄마의 정이 그리워 엄마께 잘해 드리며 살았을까?
이런 생각이 다 무슨 소용이람.
지금부터라도 더 잘해드리면 될 것을,,,,,

엄마, 사시는 동안 이젠 우리들 걱정 그만하세요.
엄마께 드리는 용돈 다른 명목을 붙여 되돌려 주지 마시고
이젠 제발 맛있는 것, 좋은 것, 하고 싶은 것 다 하시며 사세요.
엄마,,,,정말 정말 죄송해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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