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女子)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기억의 서랍에 차곡차곡 담아봅니다

별보다 더 반짝이는 그대

♡ 딸 .............. ♡

엄마, 죄송해요~~

bell-10 2000. 8. 15. 11:10
5년전 친정엄마께서 허리수술을 받으셨다.
그 이전 십수년동안 좌골 신경통이라고 믿고 한방치료니 물리치료를 해 오셨지만 호전이 되지 않았다.
내가 결혼하기 전부터 허리 아프다는 이야기를 가끔 하셨는데 우리네 엄마들이 다 그러하시듯 나이 들어 생긴 신경통이라고만 생각하신 것이었다.

더욱이 친정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동생도 결혼하고 난 뒤 혼자 사시면서 아픔도 혼자 참으셨다.
난 엄마께서 말씀을 안 하시니 그저 참으실 만 한 가보다 생각하고 별 생각 없이 살았는데 언제부터인지는 다리가 저리던 것이 통증이 되었고 통증 있는 한쪽 다리가 점점 야위어가면서 걷는 데도 불편이 생겼다.

첨부터 종합병원에 가질 않고 동네 한방의원에서 진찰해서는 좌골 신경통이라고 치료하던 것이 병세의 호전이 없고 오히려 심해져 결국은 종합병원을 찾으셨고 허리수술을 해야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얼마나 중증이었나 하면 척추뼈 두 개가 내려앉아 서로 맞붙을 정도라 그 사이에 있는 신경을 눌러 그냥 두었더라면 걷지못하는 신세가 될 정도였다.

결혼후 평소에 친정을 자주 들리지도 못했고 명절이나 다른 때에 가도 시집과 같은 곳이라 시집 일이 우선 이고 친정에는 겨우 밤에 가서는 아침이면 와야했다.
이러니 엄마의 다리상태를 관찰할 겨를도 없었고 엄마 역시 아픈 표를 내시지 않아 건성으로 지냈는데 병원에 입원하신 후 비로소 자세히 보게 된 엄마의 왼쪽다리는 뼈만 앙상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무리 그래도 자식이 둘씩이나 있는데.....

평소 심장도 좋지않으셔서 수술이 걱정되었지만 겨우 수술날짜와 시간을 잡을 수 있었다.
수술하던 날 아침 일찍 수술실에 들어가시고 동생과 난 수술실 밖에서 기다렸다.
일반 디스크 수술과는 틀려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는 했지만 기다리는 그 시간은 몇 년보다도 길었다.

뒤늦게 들어간 다른 환자들은 수술을 마치고 속속 나와 기다리던 보호자들과 돌아가는데 엄마께서는 나오실 생각을 않았다.
젤 먼저 들어가서 젤 늦게 나오신 엄마.
장장 12시간이 걸린 대수술.
마취도 덜 깨신 채 엎드린 자세로 실려 나오신 엄마.
고개가 옆으로 돌려져 보이는 엄마 얼굴은 퉁퉁 부어 내가 본 얼굴 중에는 젤 살이 찌신(?) 얼굴이었다.
또다시 왈칵 쏟아지는 눈물.

엄마는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다행히 수술경과는 좋았다.
이틀 후 일반병실로 옮겨졌고 보름인가 더 입원해 있다가 퇴원을 하셨다.
눌려진 뼈 사이를 벌리느라 엄마의 척추뼈에는 4개의 금속버팀대가 시술되었다.
회복후 제거하기도 한다지만 그 고통을 두 번 다시 안 겪으시려고 지금도 몸속에 그대로 두고 있다.
엑스레이를 찍으면 나사처럼 생긴 게 보인다.

그 때 조카애를 업고 딸린 아이 둘의 몸으로 엄마의 병간호를 해준 올케가 지금도 고맙다.
난 쭉 간호해 드리지 못하고 아이들, 집 핑계로 가끔씩 가볼 뿐이었다.
그렇게 가끔씩 가보는 나를 보고 같은 병실에 계시던 다른 엄마또래의 아줌마들이 "딸인지 며느린지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셨다.
며느리는 의무감에서 하고 딸은 마음에 우러나서 하는 게 보인다고.
그 말을 들으니 고생하는 올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난 생각이 틀린다.
의무감에서 하는 거라도 며느리만큼 할 수 없는 게 딸이다.
마음이 아무리 있으면 뭐하리.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도 없는데.

사실 노인들에게는 마음도 중요하다지만 무엇보다 실질적인 도움이 더욱 중요하다.
끼니 챙겨드리는 건 물론 옆에서 말동무해 주고 용돈도 넉넉히 드리고 편찮으시면 간호해 드리고...
이 모든게 딸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그 딸이 챙겨야 할 시집어른들이 또 계시니.

어쨌든 엄마는 퇴원하신 후 동생네 집이 시골(그때는 경북 성주)이어서 불편하다는 나의 우격다짐으로 우리 집에 오셨다.
한달 정도 계시던 엄마의 피나는 재활노력.
힘이 없어진 다리의 힘을 올리려 아픈 것도 참고 매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뒷산 약수터로 오르시던 엄마.
성한 다리로 하는 운동도 매일 하기가 힘들었던 나를 게으르다고 질책하셨다.

그 한달. 시집온 후 첨으로 엄마와 오래 함께한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더 잘해드릴 것을 하는 후회가 막심하다.
아이들이 어려 엄마께 더 관심을 기울여드리지도 못했던 것 같다.

지금도 행여 이 딸이 드리는 용돈은 가슴이 아프다 시며 어떤 명목으로든 드린 돈의 갑절을 외손주들에게 도로 주시는 엄마.
말은 않으셔도 아들이 주시는 용돈도 다시 며느리에게 돌려주시는 눈치이시다.

병원의 정기검진을 받아야 될 정도로 심장병. 고혈압 등으로 건강이 안 좋으신 엄마가 지금도 혼자 집을 지키신다.
수술전보다는 훨씬 낫지만 지금도 여전히 한쪽으로 조금 비뚤어진 불안한 몸을 이끌고 새벽으로는 뒷산을 오르시고 동네 양말공장의 실밥 자르는 일을 부업으로 하시며.

힘드시니 그만두라는 자식들의 말에
"지금 내 나이에(예순 일곱) 일없이 놀고 있는 사람들이 나는 제일 측은하게 생각된다. 내 몸이 허락하는 한 일하면서 용돈도 벌어쓰고 얼마나 좋은데.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라고 하신다.

이 달엔 엄마생신이 있는 달이다.
아이들이 개학하고 난 후이지만 올해는 꼭 가 뵈어야겠다.
시어머니 생신은 한번도 빠지지 않는 며느리인데 엄마생신은 제대로 못찾아뵙는 이 딸이 이제 못 다한 효도를 조금씩이나마 할 수있게 오래오래 사셔야 할텐데...

엄마 정말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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