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도 벌써 심삽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진갑을 두어 달 앞두고 돌아가셨으니 살아계신다면 올해 이순 넷의
연세이시다.
우리 집안내력인지 남자 분들은 모두 단명을 하셨는데 아버지께서는
감기 한 번 앓지 않으시고 회갑을 무사히 지내시기에 오래오래 사실 줄 알았다.
그런 당신께서 당뇨가 있으시더니 합병증으로 폐암 선고를
받으시고는
석달도 못 채우고 돌아가셨다.
아버지께서는 목공일을 주로 하셨는데 가끔 못이나 연장에 다치셔도
곪는 법 없이 곱게 낫는 살성을 가지셨고
한말 술을 지고는 못 가도 배속에 채워서 가실 정도로 斗酒不辭이셨으며
담배를 하루 두갑이상 피우시는 골초이셨다.
일생 병원에 가신 거라고는 딱 한 번 급성맹장때문이었는데
그것도 수술 않고 한약으로 고치셨을 정도로 건강하신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께서 어느 날 갑자기 편찮으시더니 석달만에 돌아가신 것이다.
그 당시 하나 남은(관련글 7호) 내동생은 군복무 중이었고
나는 아이들이 어려서(5세,3세) 아버지 편찮으실 동안
간병 한 번 제대로 못해 드렸다.
어머니께서 편찮으신 아버지를 붙들고 날밤을 새우며 애태우신 걸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에서 날카로운 비수소리가 들린다.
대학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어머니께서는 집을 팔아서라도
수술 한 번하고 싶어하셨지만 내가 말렸었다.
수술하셔서 낫는다는 보장이 있으면 열 번이라도 하겠지만 가망 없는 분에게
고통만 더 드린다고, 남은 식구들이 앞으로 살아가려면 집이라도 있어야 한다며
내가 말렸었다.
작은아버지께서도 그 몇 해전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작은어머니께서 우리에게 경험에 따른 충고를 해주셨다.
내가 생각해봐도 작은어머니의 말씀이 타당한 것 같아 수술을 말렸는데
"그깟 돈 없어도 산다"며 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결국 치료를 포기하고 진통제로 이어가던 아버지의 목숨이 사라진 날,
어머니도 나도 임종 후에야 겨우 도착한 동생도 함께 뒤엉켜 울었다.
아버지 상을 치르며 그때 딸만 둘이던 나는 주위 분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나는 딸이라도 넷은 낳을 겁니다. 남매는 너무
외로워요"
그래선 지 나는 지금 딸 둘,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불쌍하신 우리 아버지.
칠 남매의 맏이로 태어나셔서 강태공이신 아버지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집안 가장 노릇하시느라 중학교도 다니다 만 학력이시다.
어렸을 때 배운 목공일을 천직으로 아시고 일생 목재만 벗하고 사셨는데
작은 공장을 경영하시면서도 모질지 못해 남의 처지만 봐주느라
당신은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어려움 속에 사셨다.
그 덕택에 우리 식구들은 항상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내가 어릴 때 유치원은 물론 사립초등학교를 다닐 정도로 남부럽잖았는데
철들고나서는 한번도 우리 집에서 살아 본 적이 없었다.
그 때는 술만 드시는 아버지를 무능하다고 느끼기도 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다.
사업은 잘 안되고 여러 가지로 괴로우시니까 술만 찾으셨고
남에게 할 수 없는 화풀이를 어머니에게 하셨으리라.
아버지 나이 스물 아홉에 첫딸인 나를 얻으시고는
그렇게 좋아하셨다는 우리 아버지.
성인이 되도록 아버지께는 매는 커녕 큰소리 한번 들어본 적이 없었다.
평소 말씀이 없으시다가도 저녁시간 어린 우리들에게
당신의 6.25참전기를 실감나게 이야기 해주시던 우리 아버지.
어릴 때 우리는 매일 저녁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에
살았다.
아버지께서는 개마고원까지 진군하셨단다.
어린 우리들에게 있어서 우리 아버지는 큰 영웅이셨다.
부대대항 노래자랑 대회에서 돼지를 타실 정도로 노래도 잘하셨다는 데
아버지의 18번 곡은 '애수의 소야곡'.
키타연주까지 곁들인 아버지는 정말 노래를 잘하셨다.
막걸리 한잔을 드시면 젓가락으로 장단을 치시며 노래를 하시곤 했다.
내가 신혼여행 후 친정에 왔다가 시댁으로 갈 때 따라오셨다가 돌아가시며
눈물지으시던 우리 아버지.
결혼 후 친정나들이를 별로 못하다가 어쩌다 친정에 가게되면
너무 반가워서인지 말씀을 아끼시던 우리 아버지.
시부모님 몰래 친정부모님과 함께 설악으로 여행을 갔다가
둘째가 갑자기 아픈 바람에 텐트에서 불편하게 하룻밤만 보내고 온 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그때 좀더 여러 곳을 구경시켜 드릴 걸.
아버지 생각만 하면 회한이 너무 크다.
한없이 주신 사랑을 갚을 기회도 주지
않으신 채 떠나신 아버지가
야속하기까지 하다.
아버지에게 못 다 해드린 효도를 홀로 남아계신 어머니께 해 드려야 하는데
어머니도 우리가 드린 것 보다 더많이 자식에게 주시는 분이라 속이 상하다.
이젠 좀 편히 받으셔도 될텐데....
아버지 어머니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오월의 어느 날
아버지가 그리운 불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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