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女子)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기억의 서랍에 차곡차곡 담아봅니다

별보다 더 반짝이는 그대

♡ 딸 .............. ♡

어머니와 휴대폰

bell-10 2000. 6. 8. 22:08
♥오늘은 지난 5월16일 저녁 안양문예회관에서 열린 詩낭송회에 소개되었던 '최예옥'님의 글을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시어머님을 생각하는 며느리의 따뜻한 마음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짐을 느끼실 겁니다.
-bell-


제목 : 어머니와 휴대폰

오월의 카네이션은 어머니를 닮았다.
카네이션 아홉송이가 담긴 꽃바구니를 샀다.
시어머님 식탁에 올려 놓으면
남편도,자식도 없이 홀로 드실 식탁이
조금은 덜 쓸쓸할 거라는 생각으로 기왕이면 붉게 활짝 핀 꽃을 골라든다.
시어머님은 아홉이나 되는 자식들 모두 성가시키고 혼자서 늠름하게 사신다.
아들셋이 걸어가도 5분 거리에 살고 있으니 든든하다 하시며
이제 그만 살림을 합치자는 자식들 채근도 마다 하신다.
어머니의 삶은 늘 '대신'하는 것과 하는 삶이다.
먼저 간 남편 대신 자식들 울타리 삼아 살고,
자식들 떠나 보내고 마주앉아 도란거리는 대신 전화로 안부를 묻고,
손주들 재잘거리는 소리 대신 TV를 종일 틀어놓고 산다.
그런 어머니께 같이 하는 밥상 대신 식탁에 올려놓을 꽃바구니를 드리려 한다.
보상으로 지탱해 온 어머니의 세월에 또 하나의 '대신'을 드린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처럼 시어머님도 질곡의 세월,
누구보다 강인하게 어머니의 자리를 지킨 분이다.
쉰 둘에, 바람막이였던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내고,
자식들 눈망울을 대하면 슬픔도 사치로 여겨져
허둥지둥 살았다는 어머니의 삶.
짓다 만 세 채의 집을 완성하느라 벽돌을 하도 머리에 이고 날라서
가운데 머리가 벗겨졌다는 어머니,
남들이 일손놓고 쉴 나이에
젊어서 모르던 고생으로 손에 물마를 새 없었던 세월.
손 끝에 습진이 걸려 찬바람이 나면
붕대로 열손가락을 모두 감고 지내야 하는 어머니의 손을 생각하면
삿된 생각을 차마 못한다는 남편을 보고 있노라면
열마디 교훈보다 스스로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참된 가르침인 것을 새삼 느낀다.
자신을 위해서는 새 치마 한감 끊어보지 못한 어머니가 요즈음 들어 변하셨다.
새로 나온 물건이면 가리지 않고 호기심을 보인다.
시장 귀퉁이에서 파는 꽃무늬 찻잔을 두 개 사다가
행여 젊은 며느리에게 흉잡힐까 신문지에 둘둘 싸서 감추어 놓았다.
무안해 할까봐 보고도 못본 체 했더니
"얘, 커피 한 잔 할래? 나 커피잔 샀다." 하면서 수줍게 웃으신다.
그럴 때 어머니의 웃음은 팔순이 되어도 꽃각시의 미소를 간직하고 있다.
환갑 나이만 되어도 운전을 배우고 싶다는 어머니,
며느리가 여기저기 문화센터에 등록을 하고 나가 다녀도
젊어서 하고 싶은 것 다해봐야 한다며
대신 며느리가 가는 것을 흐뭇하게 여긴다.
그러던 어머니가 휴대폰을 탐내셨다.
아버님 산소에 갈 때 길이 막히면
큰 아들 차에 앉아 작은 아들에게, 막내에게 수시로 전화해서
어디까지 왔느냐 길은 막히지 않느냐 묻는 것이 신기해 보였으니 욕심을 낼만도 하다.
집 전화기보다 크기도 작고 기능이 복잡해서 어머니께는 무용지물이라고
설명을 해도 못내 아슴찮은 표정을 짓는다.
휴대폰을 바꾸면서 쓰던 것을 드렸다.
이것저것 누르면 안되고,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요금이 비싸니 사용하지 말라는 당부도 듣는 둥 마는 둥,
장난감 선물 받은 아이처럼 좋아라 하신다.
며칠 가지고 다녀도 전화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기에
낮에 휴대폰으로 전화를 드렸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힘이 하나도 없다.
놀라서 물으니, 잃어버릴까봐 끈을 달아서 속바지 주머니에 단단히 묶었는데
길거리에서 벨이 울리니 당황해서 끈을 풀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머리를 구부리고 받느라 그렇단다.
자식들 무릎앞에 앉혀놓고 도란도란 주고받는 목소리 대신
길모퉁이에서 속바지 들추고 휴대폰을 받는 어머니.
꽃들이 만발한 화원에,
듬성듬성 털 빠져나간 늦가을 억새가 떠오른다.
향기도 없는 카네이션 아홉송이,
자식들 숫자대로 담긴 꽃바구니를 자식 얼굴 대신으로 삼고 저녁 상을 차리실 것이다.
손주들 재잘거리는 소리 대신 TV볼륨을 크게 올려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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