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함께 20년 가까이 주부로 생활하던 내가 직장인이 된 것은 친한 친구의 요청 때문이었다.
친구가 작은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데리고 있던 여직원이 그만두게 되었다며 사람 하나 구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마침 주위에 마침한 사람이 있어 추천을 했고 처음엔 그이도 하겠다고 했는데 다음날 그이 남편의 반대로 못하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사장인 친구가 사람 구할 때까지라도 대신 일을 봐달라기에 잠시 출근을 했었다.
결혼 전 공무원 생활 경험도 있었고 다른 아줌마들과는 달리 컴퓨터로 간단한 문서도 만들 줄 알았기에 친구는 사람 구하는 일을 중지하고 나한테 매달렸다.
하지만 백조가 더 바쁘다는 말처럼 하는 일이 무척 많았던 나.
매일 출근하는 일은 도저히 못한다고 했다.
그때 친구는 말했다.
시간도 마음대로 쓰고 편하게 다니라고.
그렇게 해서 편한 마음으로 시작한 직장생활.
남들이 다 부러워했었다.
그 나이에 어떻게 사무직에 취직을 했느냐고.
처음엔 모임도, 다른 볼일도 편하게 다녔다.
그러다가 남의 일을 봐주려면 삼년상까지 봐주라는 옛말처럼 이왕 해주는 일 충실하자고 마음먹었다.
몇 가지 모임도 정리하고 다른 볼일도 조금씩 자제했다.
당시 어려운 친구의 사정을 감안하여 월급도 최저수준으로 정했고 두어 달 밀려 받는 것도 예사였다.
카드결제가 돌아오면 내 마이너스통장으로 대체해주기도 했다.
손바닥만한 종이도 따로 모아 쓰레기봉투 값도 아꼈다.
무척 고마워하던 친구였다.
이다음에 돈 많이 벌면 고마움을 갚겠다고 했다.
그땐 친구를 도와주는 일이 내 보람으로 느껴졌었다.
그해 연말 그 어려운 형편에 연말보너스라며 김치냉장고를 배달시켜준 친구.
받는 내 마음이 찡해왔다.
더 열심히 일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우린 열심히 호흡을 맞춰갔고 차차 회사사정이 나아져갔다.
적자가 흑자로 돌아섰고 내 월급도 조금씩 올랐다.
바쁠 땐 야근도 밥 먹듯 했고 휴일도 없었다.
그래도 불만이 없었다.
내가 바쁜 것 보다 더 친구는 바쁘게 일했다.
새벽에 나가서 한밤중에 돌아왔고 장거리 운전을 매일 하고 돌아다녀야 했다.
바쁜 친구를 도와 무조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렇게 2년 가까이 고생하고 나니 적자에 허덕이던 친구는 비록 임대아파트지만 집을 장만했고 남는 돈으로 어디든 투자처를 찾아 뛰어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이란 참으로 묘한 존재였다.
돈이 있으니 사람이 변해갔다.
돈이 들어오는 대로 여기저기 투자해서 묶어두고 돈이 없다며 월급 날짜를 어기기 시작했다.
없어서 못 줄때에는 내가 오히려 나중에 받겠다고 했지만 이건 경우가 틀리는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자신이 빌려주면 안 갚을지 모르니 나더러 빌려주면 대신 주겠다고 해놓고선 그 사람이 이자 한 푼 안주는데도 몇 달을 모른 체 했다.
남의 돈 안 갚으면 잠이 안 온다던 친구가 차츰 변해갔다.
친구의 형편이 나아지는 만큼 슬슬 내 불만도 쌓여가는 것이었다.
장부에 흑자 폭이 커지는데도 내 월급은 그대로였다.
전처럼 열심히 일하기 싫었다.
사촌이 논사면 배 아프다는 말도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생각할수록 배가 아파오는 것이었다.
‘흥, 지가 언제부터!’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 생각 못한다고 집안에만 있던 나를 불러 내준 고마움도 잊혀져갔고 어려움을 함께 해줘서 고맙다던 친구 마음도 변해갔다.
휴가나 추석 때 건네는 보너스가 내가 일한만큼의 보상이 못된다는 마음이 생겼고 친구 역시 내가 전보다 사무실 일을 덜 열심히 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젠 그만둬야할 때가 됐구나 하면서도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망설이다가 1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러다 남편이 식당을 개업했고 아들 녀석까지 말썽을 부리는 일이 생겼다.
이젠 정말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사장과 마찰이 생겨 3년 반의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3년 반 동안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일까?
얻은 것은 약간의 경제적 이익뿐 잃은 것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와의 우정에 금이 갔다.
되돌릴 수 없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한참동안은 서먹할 것이다.
한창 엄마의 존재가 필요한 아들을 너무 방치해뒀다.
요즘 매일저녁 녀석과 마주 앉아 공부에 취미를 붙이게 만드는 중이다.
나간다는 핑계로 집안일을 도통 하기가 싫어졌다.
반찬 가지 수라도 늘리려고 노력중이다.
건강이 나빠졌다.
신장에 이상신호가 왔고 치질이 생겼다.
병이 생길 나이이기도 하겠지만 종일 의자에 앉아 있어 생긴 병일 것 같다.
시력도 너무 나빠졌다.
주로 컴퓨터로 서류작성을 하다보니 눈이 급작스레 더 나빠진 것 같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관두길 정말 잘했구나...’ 스스로 위안을 가져본다.
이제부터 나는 자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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