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추워 못 살겠다.'며 어제부터 내복을 꺼내 입었다.
내복을 꺼내 입었다는 소리에 친구들은 하나같이
벌써부터 내복을 입기 시작하면 한겨울엔 어떻게 사느냐며
자신들은 아직 내복을 모르고 산다고 건강을 뽐낸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내복을 즐기는 사람이다.
땀나는 여름 한철 제외하곤 이른 가을부터 늦봄까지 입고 산다.
평균보다 마른 몸매라 그런지 찬바람만 불면 몸이 으스스하고
또 내복을 껴입어도 다른 사람들은 입었는지 말았는지 잘 몰라보기도 한다.
내복 이야기를 하다 보니 떠오르는 어린 시절 추억 한도막.
우리 어린 시절 그땐 왜그리 추웠는지.
지금처럼 단열이 잘 되지 않는 한옥의 특성상
지글지글 끓는 아랫목에서 솜요를 덮고 앉아 있어도 코끝은 시렸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웃목에 떠다놓은 자리끼가 꽁꽁 얼어 붙었고
밤새 식구들이 채워 둔 요강에도 살얼음이 끼기 일쑤였다.
그시절 어김없이 입어야 했던 빨간 엑스란 내복.
요즘은 얇고 따듯하고 예쁜 무늬의 내복이 많지만
그시절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내복하면 빨간내복이었다.
한겨울밤, 내복을 훌떡 벗은 아이들이 이불속으로 파고 들어가면
엄마는 희미한 전등불빛 아래서 아이들이 벗어놓은 내복을 살핀다.
솔기 구석구석 박혀있는 새하얀 서캐들.
엄마는 양 엄지 손톱으로 서캐를 꾹 눌러 터뜨리고
간혹 꼬물거리는 어른 이까지 손톱으로 눌러 잡았다.
엄마가 서캐와의 전쟁을 치르는 동안 우리 삼남매는
흥부네 아이들처럼 이불속에서 목만 내놓고 깔깔거렸다.
춥고 배고프고 불편했던 시절이지만 그때가 아련히 그리워 지는 것은
이제 나도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자꾸만 짧아지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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