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아침신문을 뒤적거리다가 눈에 번쩍 띄는 것을 발견했다.
싸게 판다는 요란한 문구가 가득한 어느 아울렛매장의 할인 전단지였다.
꼭 필요한 게 있어 전단지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폈는데
지금 우리 아들에게 꼭 필요한 겨울돕바가 단돈 일만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만원이면 티셔츠 한장 값도 안되기에
퇴근하자마자 집과는 정반대 방향인 매장을 찾았다.
내가 사려고 마음먹은 돕바는 정식매장이 아닌 길거리 매대에서 판매 중이었는데
그나마 세일 첫날인데도 불구하고 찾는 사이즈가 없었다.
이것저것 마구 뒤져가며 찾다 하는 수 없어 두 치수이상 큰 것이라도 샀다.
이렇게 갑자기 아들의 돕바가 필요해진 데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늦둥이 아들을 낳아 키워온 지난 십년 가까운 동안
귀한 아이일수록 천하게 키워야한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가며
옷 한벌 제대로 안 사주고 키웠다.
물론 위로 두딸도 물려 입혀 키우기는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세아이 모두 물려 입는 옷을 마다하지 않고 잘 입어주었고.
아들은 다섯 살이나 차이가 나는 제 사촌형에게 물려 입은 옷이
너무 커서 또다시 몇 년씩 묵혀서 입혔다.
그런데 그 물려 입은 겨울돕바 두벌을 삼일만에 모두 못쓰게 만든 사건이 생긴 것이다.
첫 번째는 아파트 내벽을 도색 하느라 페인트 주의하라는 방을 곳곳에 붙여두었는데도
조심성 없는 아들이 옷 여기저기 허옇게 페인트칠을 묻히는 바람에 결국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딱 이틀 뒤.
네시간 수업이 있는 날이라 일찍 집에 왔으려니 하고 전화를 해봐도
두시간 가까이 전화를 받지 않는 아들.
또 어디서 정신 없이 놀고 있으려니 하고 체념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엄마~~"하는데 꼭 작은딸 목소리 같았다.
작은딸이 아침에 감기기운이 있어 학교를 갔기에 어디가 많이 아픈가 싶어
"왜? 많이 아파?"물었는데 "엄마, 나야, 규동이"라며 아들이 대답했다.
(두 아이의 목소리는 엄마인 나도 얼른 구별이 안 갈 정도로 비슷하다)
"응? 규동이야? 근데, 너 목소리가 왜 그렇게 힘이 없니?"
아들이 아픈 아이처럼 목소리를 낮게 깐 이유가 있었다.
그 날 쉬는 시간에 바깥에서 신나게 놀다보니 땀이 날 정도로 덥더란다.
입고있던 돕바를 훌러덩 벗어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놀다가
시작종이 울리니까 옷이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교실로 달려갔던 것이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수업시간은 시작되었고 다시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얼른 옷을 벗어둔 자리로 달려가 봤지만 이미 옷은 행방불명.
그때 옆에 있던 친구가 하는 말이 아까 어떤 애들이 옷을 불태우는 것을 봤다고 하더란다.
짧은 쉬는 시간동안 도저히 옷을 찾을 수가 없어 수업을 마치고
학교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 마침내 옷을 찾았을 때는 이미 옷은 반쯤 타다말았더란다.
아무튼 그 외투 주머니에 열쇠를 넣어두었으니 옷을 찾지 못하고는 집에도 들어올 수 없어
두시간 동안 옷과 열쇠를 찾아 헤매느라 그때서야 들어왔단다.
어떻게 옷을 걸레처럼 아무렇게나 벗어두었으면 버리는 옷이라 생각하고 태웠을까?
옷에 불이 붙을 정도라면 제법 연기도 나고 불길이 컸을 텐데
학교 내에서 아이들이 정말 옷을 불태웠을까?
혹 우리 아들이 불장난을 하다가 스스로 옷을 태운 건 아닐까?
요즘처럼 건조한 날씨에 불이 번졌으면 어떻게 했을까?
기가 막히는 반면 걱정이 꼬리를 물었지만
일단 아들의 말을 믿기로 작정하고 더 이상 추궁하지는 않았다.
대신 옷 간수 잘못한 벌로 이제 외투 없이 겨울을 한번 지내보라고 엄포만 놓았다.
그 다음날 등교하는 우리 아들의 의상.
그래도 춥다 싶었던지 타버린 외투와 세트였던 조끼 위에
가을잠바를 걸치고 두꺼운 겨울모자에 목도리.
참 가관이었지만 못 본체 그냥 두었다.
그 날 저녁 가까운 백화점에 옷을 사러 나갔더니
이건 아이 옷이 어른 옷보다 더 비싼 게 아닌가.
늘 물려 입히다 보니 옷값을 제대로 몰랐던 탓에 도저히 선뜻 살수가 없었다.
다큰 아이라면 몇 년 입힐 요량으로 사줄 수도 있으련만 어느 정도 맞게 입히려면
한해 밖에 못 입힐 옷인데 거금을 주고 사려니 자꾸만 손이 오그라질 수밖에.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는데 이렇게 싼 옷이 있다니
내 눈이 번쩍~!! 뜨이고도 남을 일이었다.
두 치수 이상 큰 옷이었지만 집에 와서 입혀보니 조금 크기는 해도 입힐 만 했고
엄마가 이리 쉽게 새 옷을 사주리라 기대도 안 하던 아들은
엉겁결에 생긴 새옷을 입어보고 또 입어보며 마냥 좋아했다.
얼마 주고 샀냐고 물어보는 아들에게 "니가 돈 낼래?"했더니 대꾸를 못한다.
'야, 임마, 그거라도 하나 얻어 걸친 게,
다 이 엄마의 예리한 눈썰미와 발품 덕이다, 알간?'
마음속으로 이런 기막힌 말을 해가며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모자지간.
언제쯤이면 보기만해도 든든한 아들로 다가올까......
싸게 판다는 요란한 문구가 가득한 어느 아울렛매장의 할인 전단지였다.
꼭 필요한 게 있어 전단지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폈는데
지금 우리 아들에게 꼭 필요한 겨울돕바가 단돈 일만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만원이면 티셔츠 한장 값도 안되기에
퇴근하자마자 집과는 정반대 방향인 매장을 찾았다.
내가 사려고 마음먹은 돕바는 정식매장이 아닌 길거리 매대에서 판매 중이었는데
그나마 세일 첫날인데도 불구하고 찾는 사이즈가 없었다.
이것저것 마구 뒤져가며 찾다 하는 수 없어 두 치수이상 큰 것이라도 샀다.
이렇게 갑자기 아들의 돕바가 필요해진 데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늦둥이 아들을 낳아 키워온 지난 십년 가까운 동안
귀한 아이일수록 천하게 키워야한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가며
옷 한벌 제대로 안 사주고 키웠다.
물론 위로 두딸도 물려 입혀 키우기는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세아이 모두 물려 입는 옷을 마다하지 않고 잘 입어주었고.
아들은 다섯 살이나 차이가 나는 제 사촌형에게 물려 입은 옷이
너무 커서 또다시 몇 년씩 묵혀서 입혔다.
그런데 그 물려 입은 겨울돕바 두벌을 삼일만에 모두 못쓰게 만든 사건이 생긴 것이다.
첫 번째는 아파트 내벽을 도색 하느라 페인트 주의하라는 방을 곳곳에 붙여두었는데도
조심성 없는 아들이 옷 여기저기 허옇게 페인트칠을 묻히는 바람에 결국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딱 이틀 뒤.
네시간 수업이 있는 날이라 일찍 집에 왔으려니 하고 전화를 해봐도
두시간 가까이 전화를 받지 않는 아들.
또 어디서 정신 없이 놀고 있으려니 하고 체념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엄마~~"하는데 꼭 작은딸 목소리 같았다.
작은딸이 아침에 감기기운이 있어 학교를 갔기에 어디가 많이 아픈가 싶어
"왜? 많이 아파?"물었는데 "엄마, 나야, 규동이"라며 아들이 대답했다.
(두 아이의 목소리는 엄마인 나도 얼른 구별이 안 갈 정도로 비슷하다)
"응? 규동이야? 근데, 너 목소리가 왜 그렇게 힘이 없니?"
아들이 아픈 아이처럼 목소리를 낮게 깐 이유가 있었다.
그 날 쉬는 시간에 바깥에서 신나게 놀다보니 땀이 날 정도로 덥더란다.
입고있던 돕바를 훌러덩 벗어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놀다가
시작종이 울리니까 옷이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교실로 달려갔던 것이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수업시간은 시작되었고 다시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얼른 옷을 벗어둔 자리로 달려가 봤지만 이미 옷은 행방불명.
그때 옆에 있던 친구가 하는 말이 아까 어떤 애들이 옷을 불태우는 것을 봤다고 하더란다.
짧은 쉬는 시간동안 도저히 옷을 찾을 수가 없어 수업을 마치고
학교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 마침내 옷을 찾았을 때는 이미 옷은 반쯤 타다말았더란다.
아무튼 그 외투 주머니에 열쇠를 넣어두었으니 옷을 찾지 못하고는 집에도 들어올 수 없어
두시간 동안 옷과 열쇠를 찾아 헤매느라 그때서야 들어왔단다.
어떻게 옷을 걸레처럼 아무렇게나 벗어두었으면 버리는 옷이라 생각하고 태웠을까?
옷에 불이 붙을 정도라면 제법 연기도 나고 불길이 컸을 텐데
학교 내에서 아이들이 정말 옷을 불태웠을까?
혹 우리 아들이 불장난을 하다가 스스로 옷을 태운 건 아닐까?
요즘처럼 건조한 날씨에 불이 번졌으면 어떻게 했을까?
기가 막히는 반면 걱정이 꼬리를 물었지만
일단 아들의 말을 믿기로 작정하고 더 이상 추궁하지는 않았다.
대신 옷 간수 잘못한 벌로 이제 외투 없이 겨울을 한번 지내보라고 엄포만 놓았다.
그 다음날 등교하는 우리 아들의 의상.
그래도 춥다 싶었던지 타버린 외투와 세트였던 조끼 위에
가을잠바를 걸치고 두꺼운 겨울모자에 목도리.
참 가관이었지만 못 본체 그냥 두었다.
그 날 저녁 가까운 백화점에 옷을 사러 나갔더니
이건 아이 옷이 어른 옷보다 더 비싼 게 아닌가.
늘 물려 입히다 보니 옷값을 제대로 몰랐던 탓에 도저히 선뜻 살수가 없었다.
다큰 아이라면 몇 년 입힐 요량으로 사줄 수도 있으련만 어느 정도 맞게 입히려면
한해 밖에 못 입힐 옷인데 거금을 주고 사려니 자꾸만 손이 오그라질 수밖에.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는데 이렇게 싼 옷이 있다니
내 눈이 번쩍~!! 뜨이고도 남을 일이었다.
두 치수 이상 큰 옷이었지만 집에 와서 입혀보니 조금 크기는 해도 입힐 만 했고
엄마가 이리 쉽게 새 옷을 사주리라 기대도 안 하던 아들은
엉겁결에 생긴 새옷을 입어보고 또 입어보며 마냥 좋아했다.
얼마 주고 샀냐고 물어보는 아들에게 "니가 돈 낼래?"했더니 대꾸를 못한다.
'야, 임마, 그거라도 하나 얻어 걸친 게,
다 이 엄마의 예리한 눈썰미와 발품 덕이다, 알간?'
마음속으로 이런 기막힌 말을 해가며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모자지간.
언제쯤이면 보기만해도 든든한 아들로 다가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