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女子)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기억의 서랍에 차곡차곡 담아봅니다

별보다 더 반짝이는 그대

♡ 엄마(친정엄마)♡

못말리는 세 모녀

bell-10 2001. 10. 21. 15:28


정말 무모했다.
결국 망신살만 뻗칠 일을 저지르고 만 셈이었다.

경기도에서 여성인터넷활용대회를 연다고 했다.
참가연령이 만 15세 이상이라 작은딸까지 참가가 가능했다.
지난 6일 있은 예선대회는 집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문제를 풀어 전송을 하면 된다고 했다.

중간고사가 코앞인 작은딸과, 친구들과 만날 약속이 있다는 큰딸을 앞세우고
컴퓨터가 두 대있는 수원의 사무실까지 갔다.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 약속시간에 늦다며 짜증을 부리는 큰딸.
시험공부시간 뺏긴다며 안달을 해대는 작은딸.

시간을 절약키 위해 반씩 문제를 나누어 풀게 했고
세 모녀가 함께 본선에 참가해볼 량으로 완성된 답안을
두 딸과 내 이름으로 따로따로 전송했다.

아무튼 일주일 후 예선에 통과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해당사이트를 접속해보니 본선 참가자가 43명이라고 나와있었다.
작은딸이 제 언니에게 "언니, 예선참가한 사람들 모두가 43명 아닐까?
뽑으려면 40명이나 50명,,,, 이렇게 뽑지 43명이 뭐냐?"고 말했다.
한마디로 시시한 대회라는 뜻이 내포된 발언이었다.

그렇거나 말거나 본선에 참가하려면 작은딸은 수업을 빼먹어야 했고
담임선생님이 토요일 수업 한시간을 하지말고 일찍 가라는 편리를 봐주셨다.

이렇게 해서 참가하게 된 본선.
20일 오후 두시에 대회장소에 도착해보니
학생에서 나 같은 나이의 아줌마들까지
모두 40명의 좌석 배치도가 있었다.
미리 온 사람들은 벌써 컴퓨터로 정보사냥(?)을 하고 있었고
모두들 컴의 도사처럼 보였다.
'큰일났다, 꼴등은 맡아두었네, 정말 망신이다......'

이윽고 시작한 본선 대회.
예선 때와 마찬가지로 객관식 열 문제, 주관식 다섯 문제,
그리고 문서작성 한 문제가 나왔다.
객관식이나 주관식은 이곳 저곳 사이트를 헤집어가며 답을 찾았다.
어떻게 찾았는지 전혀 해석조차 불가능한 영어 사이트까지 뒤져서 답을 찾기도 했다.
이 놀라운 끈기에 나 스스로도 놀랄 지경이었지만 답은 제대로 찾지도 못하고
정해진 시간만 소비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어느 정도 대충 풀고 모르는 건 찍기라도 하면 되는데 문서작성은 그게 아니었다.
사무실에서 해보던 일반적인 문서작성인줄 알았는데
그림까지 다운받아 삽입시켜야하는 고난도의 문제로 예선문제랑 그 유형이 꼭 같았다.
한번만 직접 풀어봤더라면.....정말 예선 때 직접 풀어보지 않은 것이 후회막급이었다.
이렇게 쩔쩔매고 있는데 감독관이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시험시간이 종료되었고 그곳에서도 답을 전송시켜야 하는데
나는 답을 시험문제지 자체에 적어두었을 뿐 하나도 전송시키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다 나가고 한 오분정도 더 시간을 끌며 답을 해당사이트 답안지에 적었지만
결국 객관식 열 문제의 답 밖에 적지 못하고 말았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감독관의 눈에 비쳐졌을 내 꼬락서니.
'저 실력으로 어떻게 예선 통과했을까? 아마, 아이들이 대신 해 줬나보다'
말은 않아도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시험장을 나와서 딸들을 찾았다.
자초지종을 아이들에게 말하니
"엄마, 우리가 문제 푸는 것 다 보셔놓고 어떻게 그랬어요?
첨부터 답 사이트 창을 띄워놓고 답을 적어나가야지요, 쯧쯧..."
아이고, 이 망신을 어쩌누......

본선대회의 결과는 일주일 후에 알 수 있다.
나는 꼴등이 분명하지만 우리 두 딸의 성적이 궁금하다.
딸들도 이번이 좋은 경험이었으리라.

아무튼 그 날 땅에 떨어져버린 엄마의 위신.
실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욕심을 부린 게 화근이었다.
두고보라지, 내년에도 참석해서 오늘의 이 망신을 꼭 갚으리라.....

"얘들아, 우리 내년에도 참가하자"
"네, 엄마~!!"
우린 아무래도 못 말리는 그 에미에 그 딸들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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