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초부터 별러왔던 화분 분갈이를 드디어 해냈다.
잠깐이면 될 줄 알았던 일이 오후 내내 걸렸고
덕택에 이튿날 아침인 지금 주먹이 꽉 쥐어지지 않을 만큼 힘들다.
우리 집 베란다에는 난 화분을 포함하여 크고 작은 화분 사십여개가
사철 내내 푸르름을 선사해주고 있다.
생각나면 한번씩 물주는 것이 다인데
그래도 잘 자라주고 있는 식물들이 어떨 땐 참 용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 동안 크기가 작은 화분은 마음먹으면 언제든 손볼 수가 있어 가끔 분갈이를 했었는데
벌써 칠년 넘게 키워온 관음죽은 보기만 해도 '저걸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앞선다.
중간에 한번 제법 큼지막하다싶은 분으로 옮겨 심었지만 얼마나 잘 자라는지
화분이 다 차고도 넘칠 정도로 너무나 빽빽했다.
미루고 미뤄왔던 관음죽 분갈이까지 오늘은 드디어 해낸 것이다.
내 몸은 힘들어도 세 개로 늘어난 보기에도 시원한 관음죽을 보노라니 마음이 뿌듯하다.
그저 물만 주는 것이 다인 양 무식했던 주인을 속으로 얼마나 원망했으랴.
이번에 분갈이를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은 순전히 우리 막둥이 덕이다.
아이 학교과제가 수세미, 강낭콩... 등을 집에서 기르는 것이었다.
강낭콩은 지난해에도 길러본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수세미 씨앗을 사러갔다가
아파트에서도 베란다 창밖에 화분 틀을 이용해
고추, 방울토마토 등을 길러 따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생각이 나서
옆에 나란히 있던 고추모종 몇 그루도 함께 샀다.
지난해 이사온 이 아파트에는 마침 바깥 화분 틀이 있다.
딸기 등을 담는 스치로폼 상자를 이용해 재배한다기에 일찍이 상자도 하나 준비해둔 터였다.
일요일인 어제아침 막둥이와 함께 매일 운동 다니는 산엘 함께 갔다.
평소에는 집에서부터 걸어가는데 어제는 분갈이에 필요한 산 흙이라도 퍼올 양으로
비료포대와 꽃삽을 준비해 차에 싣고 갔다.
먼저 산부터 올라갔다 와서 흙을 푸려고 사방 두리번거렸지만
어디 흙을 어떻게 퍼야할지 생각이 복잡했다.
산의 흙을 퍼올거란 내 이야기를 들은 어떤 엄마가
그럼 개미나 벌레 같은 것도 함께 와서 나쁘다고 한 이야기가 불현듯 생각난 것이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이왕이면 이쁜 화분을 구입하면서
흙도 얻을 량으로 집 근처에 즐비한 화원으로 갔다.
마음에 드는 화분을 몇 개 고르고 거름과 흙도 사서(정말 흙도 팔았다) 집으로 온 것이 열두 시쯤.
얼른 점심을 먹고 분갈이를 서둘렀다.
그날 따라 남편은 아침 일찍 고교동기들 산행모임에 가고 없어 온통 혼자만의 일이었다.
먼저 상태가 나빠 보이는 난 분부터 시작했다.
죽어 가는 뿌리와 가지를 잘라내고 새로운 난 흙을 채웠다.
난 기르는 법을 조금 배우기도 했는데 관엽식물과 함께 키우다보니
배운 대로 실천이 되지 않아서 싱싱하게 키우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 다음 관엽들.
작은 화분부터 적당한 크기의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그 중에 시댁에서 한가지 얻어와 키우기 시작한 돈 나무(어머님이 부르신 이름).
이 나무가 잘되면 집안에 돈이 모인다고 하셨다.(하지만 우리 집은 아직도 돈이 나가는 중)
선인장처럼 도톰한 동그란 잎 하나만 흙에 꽂아두어도 뿌리가 내린다.
집에 오는 사람마다 한가지씩 잘라줬건만 어느새 나무처럼 밑동이 굵어졌다.
화분전체를 뿌리가 가득 채우고 있던 관음죽까지 분갈이를 마치고 나니
정말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마지막에는 작은 화분에 아들의 과제물인 수세미를 심고
스치로폼 상자에는 고추모종을 심었다.
온통 흙으로 어질러진 베란다 물 청소까지 마치고 나니 저녁때가 다 되었다.
그때서야 한잔 걸친 불그레한 얼굴로 집에 들어서는 남편.
힘든 일은 용케 피해 다니는 남편이지만 다른 때와는 달리 그리 밉살스럽지가 않았다.
내내 화초들과 싱싱한 대화를 나눈 덕택일까?
몸은 힘들어도 기분은 상쾌, 통쾌한 보람찬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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