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女子)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기억의 서랍에 차곡차곡 담아봅니다

별보다 더 반짝이는 그대

♣女子의 이름으로♣

취업? 그까이꺼 머~~!!(오십아줌마 취업성공담)

bell-10 2005. 7. 12. 09:22
 
-오십아줌마가 취업에 성공한 이야기 한도막-


매일 아침마다 남편과 아이들이 나가기 무섭게 컴퓨터 전원을 꼽는 여자.
귀밑머리가 제법 희끗한 그녀는 왜 이렇게 컴퓨터가 급한 걸까요?
흔히 말하는 인터넷 고스톱 때문에? 아니면 아이들이 빠져있는 다른 게임 때문에?

컴퓨터에 미친 듯이 보이는 그녀는 올해 우리나이로 오십 하나인 바로 저 자신입니다.
게임에 빠져서라면 차라리 다행한 일인데 그게 아니라 먹고사는 일이 걸린 다급한 신세니 문제죠.

컴퓨터 화면이 다 켜질 때까지 단 몇 초간 기다리는데도 조바심이 납니다.
인터넷이 접속되자마자 즐겨찾기로 등록해둔 노동부고용전산망 워크넷(WORK-NET)을 열고선
곧바로 일자리 정보 검색에 들어갑니다.
안양, 과천, 군포, 의왕, 수원, 성남, 안산 등등 제가 사는 의왕에서 가깝다고 생각되는 지역의 일자리를 샅샅이 훑어봅니다.

그러나 수십 명의 일손을 구하는 회사 어디에도 50세 나이의 주부를 사무직으로 뽑는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오늘도 허탕입니다.

그랬어요.
다섯 달 전만 해도 전 매일매일 아침저녁으로 일자리를 찾아 ‘워크넷’을 훑고 다녔습니다.

오십인 제 나이는 생각지도 않고 사무직 취업을 원했으니 일자리가 없는 게 당연한 일이었겠죠.
사무직 일자리 거의 대부분은 20대 젊은 사람을 원하더군요.
어쩌다 주부를 뽑는 곳이 있어도 30대를 원했고 최고로 후하게 나이를 봐주는 곳도 40세가 고작이었습니다.

결혼 전 8년간의 공무원 경력과 4년 가까운 사무직 경력을 가진 저였어요.
아니, 경력이 문제가 아니라 그 무엇보다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죠.
주위사람들이 일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한번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성격이거든요.

젊은 사람 못지않은 자부심을 안고 일자리를 찾아 나섰지만 나이제한에 걸려 지원조차 해볼 수 없는 것이 눈앞의 현실이었습니다.
이태백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청년들의 실업난 속에서 저 같은 늙다리까지 일자리에 욕심을 내는 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답니다.

4년 전 이십년 가까이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사십 중반이 넘은 나이에 조그만 회사 사무직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었죠.
사장님하고 친분이 있어 잠시 일을 도와준 것이 계기였습니다.

갑자기 그만 둔 직원의 대타로 ‘사람 구할 때까지’라는 조건을 걸었는데 제가 일하는 스타일이 마음에 드셨는지 계속 나와 주기를 바라는 것이었어요.

이십년 가까이 전업주부였던 제가 하루 종일 시간에 얽매여 일을 해야 한다니...
동네 여자들과 여기저기 맛 순례를 하며 돌아다니는 즐거움은 어찌하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이었어요.
“그 나이에 누가 사무직으로 써주겠냐, 못이기는 척 나가.”

그래서 시작한 일이었죠.
전문직은 아니었지만 또래 아줌마들이 식당으로, 공장으로 노동일을 하는 나이에 책상에 편히 앉아 연필 굴리는 일을 한다고 다들 부러워했지요.
일단 시작하고 나서는 ‘나이 많은 사람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소리 들을까봐 정말 열심히 일했고 어느 정도 인정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만둘 일이 생긴 거예요.
지난 가을 이 불경기에 250석의 대규모 식당을 인수한 남편 때문이었죠.
이제 그만두면 두 번 다시 직장을 잡기 어렵다는 생각에 처음엔 주말만 식당일을 돕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카운트에 앉아 돈만 세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홀이며 주방이며 종횡무진 뛰어다녀야 하더군요.
설거지 하느라 손에 물집이 잡히고 밤12시 넘기는 일은 다반사였어요.
원래도 마른 몸인데 바지허리에 주먹 하나가 들락날락할 정도로 살이 쏙 빠지더군요.

두 달 정도 주중엔 회사에 나가고 주말엔 식당일을 도왔는데 힘이 너무 들었어요.
또 무엇보다 남의 일보다는 집안 일이 우선 아니냐는 주위의 충고에 과감히 사표를 던졌습니다.

그러나 오산이었습니다.
식당 영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불경기의 여파로 결국 다섯 달 만에 가게 문을 닫고 말았어요.
그것도 엄청난 부채만 끌어안은 채로 말입니다.

급하게 갖다 쓴 돈의 이자가 불어나 더 많은 원금이 되더군요.
남편에게서 생활비 받는다는 생각은 꿈도 못 꾸게 되었어요.
매달 갚아야 하는 이자는 점점 불어나는데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결국 집을 팔아 원금의 일부를 갚고 반 지하 전세방으로 내려앉아야 했습니다.

한창 키가 크는 막내아들이 다리를 다 펴고 잘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방.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방이 세 개나 되는 집이라 우리 다섯 식구가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한데 모여 살 수 있음이었죠.

이런 처지에 가만히 앉아 남편만 쳐다볼 순 없었어요.
어디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했어요.
벼룩시장, 가로수 등등 취업정보가 적힌 광고신문을 눈이 아프도록 들여다봤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번쩍 번개가 스치듯 생각 하나가 떠올랐어요.
언젠가 들었던 "워크넷"이 갑자기 생각난거예요.
얼른 컴퓨터를 켰습니다.
주소 창에 한글로 그냥 ‘노동부’라고 적고 '엔터(Enter)' 키를 눌렀어요.
모니터 화면이 바뀌면서 노동부 홈페이지가 열리더군요.

구석구석 살피는데 ‘워크넷’이란 글씨가 눈에 들어왔어요.
노동부에서 운용하는 ‘워크넷’에는 광고신문과는 달리 구인내용은 물론 상세한 회사정보까지 실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대감도 잠시였어요.
그 많은 일자리에는 모두 나이제한이 있었습니다.
오십의 나이는 식당이나 주방 일자리도 쉽지 않더군요.
옛날 같으면 손주 돌보는 할머니가 됐을 나이니 그럴 수밖에요.
그러나 어딘가 분명 저를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반드시 있으리란 믿음으로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매일 아침저녁으로 일자리를 찾아 헤매던 어느 날, 드디어 ‘50’이라는 숫자가 눈에 띄었어요.
두 달 정도 근무할 일용직을 뽑는 내용이었는데 나이 상한선이 딱 50까지였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력서를 제출하러 갔더니 채용담당자가 집이 멀어서 다닐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우리 집은 의왕인데 그곳은 성남이었거든요.
무조건 뽑아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고 했지요.

며칠동안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고 있는데 출근하라는 연락이 오더군요. 정말 기뻤습니다.
차비와 점심 값을 빼고 나면 아주 작은 보수였지만 이 나이를 뽑아준 것만도 감지덕지한 일이었죠.
하루도 빼먹지 않고 도시락까지 싸들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기간이 정해진 일이라 계약기간이 끝난 후가 문제였어요.
계속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틈틈이 워크넷을 살폈지만 역시 나이가 문제더군요.

‘어떡한다? 여기서 포기해야 하나??’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한 가지 꾀가 떠올랐어요.
‘그래, 이판사판이다. 까짓 거 돈 드는 일 아닌데 닥치는 대로 지원이나 해보자.’
나이제한에 지레 겁을 먹고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일을 감행키로 한 것이죠.

우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써서 컴퓨터에 저장을 해뒀어요.
그리고는 ‘주부 가능’ 이라는 일자리에 무조건 지원서를 보냈습니다.
‘뽑아만 주신다면 절대로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라는 내용의 인사말도 빠뜨리지 않았고요.
메일이 가능한 곳은 메일로, 팩스가 가능한 곳은 팩스를 이용하여 수십 통의 지원서를 보내봤어요.
매일 초조하게 연락을 기다렸지만 감감 무소식인거 있죠.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사장님 면접을 보러 오라고요.
되고 안 되고는 나중 문제였죠. 연락 온 사실만으로도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꽝이었어요. 사장보다도 많은 나이인 제가 부담스러웠던 거죠.
그래도 실망스럽지만은 않았어요. 뭔가 희망이 보였어요.

그 후 두 곳에서 더 연락이 왔었고 그 중 한 곳이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입니다.
집에서도 가깝고 벤처텔 빌딩 8층에 위치한 사무실이 전망도 좋은 곳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워크넷’에 29세 이하 젊은 사람을 뽑는다고 올렸다는데 얼토당토않게 50세 아줌마의 지원서가 메일로 왔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싶어요.

젊은 사람 대신 저를 택하느라 많이 망설였다는 사장님.
오십이 넘은 저를 인정하고 받아 준 고마우신 사장님과 회사를 위해 제가 할 일은 젊은 사람보다 더 열심히 더 성실한 자세로 일하는 것뿐이라 생각한답니다.

그리고 구직자 여러분들에게 한말씀 드리고 싶어요.
"제게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워크넷’을 여러분들도 두드려 보세요, 반드시 취업의 문이 열릴 겁니다."

참, 자식 다 키운 사오십대 주부들이 많이 겪는다는 빈둥지증후군 아시죠?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업무를 익히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사는 제겐 어림없는 이야기예요.

비록 지금은 힘들고 고단한 삶이지만 언젠가 좋은 날이 오리라 믿으며 오늘도 출근길에 스스로 주문을 걸어봅니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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