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女子)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기억의 서랍에 차곡차곡 담아봅니다

별보다 더 반짝이는 그대

♣女子의 이름으로♣

현충일을 맞아......

bell-10 2000. 6. 6. 19:50
현충일이다.
아침에 큰딸이 조기를 달았다.
민족의 비극이라는 6.25가 벌써 반세기 전의 일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옛날처럼 '때려잡자 김일성' 운운하는 반공표어는 말도 안 되는 소리겠지만
그 동안 북한이 해 온 일련의 일들을 되새겨보면 이번에도 우리가 손해보게 되지는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런 정치적인 문제는 정부에서 알아서 할 일이고.

현대에서 금강산 유람선 사업을 시작했을 때
우리 아버님께서도 친구분들과 같이 가실 계획을 세우신 적이 있었다.
어머님께서는 거동이 불편하시기 때문에 가실 엄두도 못 내실 일이었지만
다른 연유로 속이 상하셔서 한마디 하셨다.
"그 원수 놈들에게 뭐하러 돈 쓰러 가느냐, 그 돈 있으면 다른 일에 쓰지"

우리 어머님은 무남독녀이시다.
원래는 남매가 같이 자랐는데 6.25에 참전했던 남동생이 전사했다고 한다.
그러니 6.25를 일으킨 북한이 어머님에게 원수놈인 건 지극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전사통지서를 받고 난 뒤에도 다른 전선에서 봤다는 사람들이 있어
돌아가신 시외할머니께서는 살아 생전에 '언젠가는 돌아올 아들'을 위해
한 번도 이사를 하지 않고 그 자리 그 집에서 사셨다.
그러다 지금 살고계신 아파트로 이사하신 지 삼년도 채 되지 않아 돌아가신 것이다.

우리 어머님께서는 친정제사를 모시고 있는데
할머니 돌아가신 후 명절제사에는 꼭 동생 몫도 챙기신다.
그러시면서도 아버님이랑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기라도 하실 때면
"언제든지 동생 돌아오면 내재산 반은 돌려줘야 된다"고 얘기하시곤 한다.
국군포로로 잡혀 있다가 생환해 오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신 후에는 더욱 집착하시는 것 같다.

칠십이 넘으신 시부모님께서도 부부싸움이란걸 하신다.
그 역시 젊은 우리들의 이유와 비슷한 이유로.
그럴 때면 우리 어머님은 "내가 부모형제 없으니 더 무시한다"며 우시곤 한다.

내가 시집왔을 때 우리 어머님은 형제가 많지 않게 자란 내가
맏이 역할을 제대로 못할까 봐(정말 제대로 못하고 있다) 탐탁지 않아 하셨고
내가 내리 딸만 둘 낳았을 때도
내 남편 위로 딸 셋을 낳아보신 터라 동병상련의 아픔을 이해해 주셨다.

젊으셔서 공무원의 아내로 어려운 살림을 도맡아 하시다가 편해지실 때쯤
온갖 성인병(비만, 당뇨, 혈압, 심장, 관절 등)으로 거동마저 불편하신 우리 어머님.
그야말로 형제자매도 없으신 데 거동이 불편하셔서 친구마저 없으신 우리 어머님.
집안에만 계시면서 온갖 옛날 일에 대한 추억으로만 사시는 것 같으신 우리 어머님.
칠십 줄의 다른 할머니들은 아직도 등산을 다니실 만큼 정정하시던데.....
오늘도 돌아가신(아직 살아 계실지도 모를) 동생 생각으로 한숨 짓고 계실 어머님을
생각하면 나역시 가슴이 아프다.

상이용사, 전몰군경미망인, 전몰군경유족 ........
현충일이 있는 6월이 오면
치밀어 오르는 가슴의 한을 부둥켜안고 사는 사람들이
아직 많은 것이 이 땅의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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