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나가요~~~"
엉덩이가 무거운, 아니 배가 무거운 남편을 채근하여 아들과 함께 어두운 현관문을 나섰다.
드디어 오늘부터 밤운동(?)에 돌입한 것이다.
산달이 임박한 임산부처럼 나날이 불러오는 배를 무대책으로 일관하던 남편이 어느날엔가 한마디 툭 던졌다.
"우리 밤 10시에 운동장가서 한 시간쯤 운동하고 올까?"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 "정말?"하고 화답했었는데 맨날 늦게 들어오느라 차일피일 날짜만 가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오늘 일찍 들어온 남편이(일찍 이래야 8시가 훨씬 넘어서지만) 저녁을 먹고 난 뒤 더욱 불러진 배를 안고 바로 거실소파에 앉아 TV를 켜기에
"잘됐다, 오늘부터 당장 운동하자, 시작이 반이다!"며 강제로 등을 떠밀었다.
드디어 밤운동을 위한 나들이를 시작한 것이다.
나와 아이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엉덩이를 붙여보려는 남편의 표정은
'아이고, 내가 왜 그런말을 했누,,,'하는 바로 그것이었다.
아파트 바로 옆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밤 9시30분의 늦은 시간임에도 어둑어둑한 운동장에 아이와 함께 바람쐬러 온 가족들도 있고
혼자서 뛰는 아주머니, 아저씨,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햇볕에 탈 염려도 없고 바람도 솔솔 부는 날씨가 운동하기에는 그저 그만이었다.
남편은 준비운동을 조금 하는 듯하더니 "오늘은 다섯 바퀴만~!"하는 것이었다.
"에게? 겨우 다섯 바퀴?"
전에 나는 열 다섯 바퀴씩 뛰었다, 그걸 뛰려고 밤에 나왔느냐, 잔소리를 해댔지만 정말 남편은 딱 다섯 바퀴를 십분에 걸려서 뛰고는 더 이상 못 뛰겠단다.
운동장이 좁으니 다섯 바퀴래야 겨우 5,6백 미터나 될까?
그래도 반바지 반소매 차림의 그 육중한 몸에서는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덩달아 뛰는 나는 긴소매 긴바지인데도 겨우 땀이 날까말까한데,,,
저런 물탱이 살, 아니 술탱이 살이지,,,
아들은 아빠의 고충도 모른 채 그저 밤나들이가 즐거운지 아빠 곁에서 뛰다가 엄마 곁에서 뛰다가 하는 게 목줄 풀린 강아지 같았다.
아무튼 나간지 이십 분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비록 운동량은 미미했지만 출발에 의미를 두고 싶어 운동량이 적니 많니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잔소리를 안으로 삼켰다.
나는 오늘 오전에도 한시간 거리를 걸었으니 이만하면 운동량 초과인데,,,,
이왕 말이 나왔으니 남편 이야기를 해보자.
7년 열애 끝에 결혼한 남편을 맨 처음 만났을 때는 키 175에 몸무게 60 키로그람대의 날씬한 몸매를 가진
잘 생긴 멋진 남자였다.(내눈에만)
만날 때마다 늘 양복을 차려입고 쇼윈도나 거울도 잘 들여다보는 남자.
멋진 모습으로 담배를 피던 남자.
함께 걸어가면 누군가 자꾸 쳐다보는 듯한 남자.
정말 착각은 자유였다.
그런데 늦깎이로 군 입대를 한 뒤 첫 면회를 가보니 웬 호빵이 떠억하니 나타났다.
정말 터질 듯한 얼굴로 나타난 내 남자.
그때 함께 갔던 장래 시댁식구들은 살이 쪄서 좋다고 했지만 난 영 아니올시다 였다.
하지만 운명임을 어쩌랴!
자꾸만 보고싶어 결혼이란 걸 하고 나서 여태 살면서 그 흔한 보약한번 안 해줬는데도 나날이 늘어만 가는 저 살.
결혼 육년만인가 담배를 끊더니 입이 심심하다며 그저 껌이니 사탕이니 과자니 입을 놀리지를 않았다.
담배끊은 것만도 기특해서 심심풀이 땅콩을 마냥 대준 나.
그 석달쯤 뒤 거실에 남편과 함께 앉아 TV를 보고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남편의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내 귀에 거슬릴 정도로 들리는 게 아닌가.
그때서야 심각한 생각에 "자기, 체중 많이 늘었지?"하고 물어봤지만 "절대 모르쇠"이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그때의 남편 체중이 무려 88올림픽이었단다.
그 뒤로 자기 깐에는 살을 뺀답시고 식사량을 줄였다는데 한밤에 배가 고파 눈이 떠지면 찬물로 고픈 배를 달랬다나, 어쨌다나
그런 눈물겨운(?)이야기를 나중에야 했다.
마누라는 남편의 그 피눈물나는 심정도 모르고 업어가도 모를 만큼 곯아 떨어져 자기 바쁜 것을 보고
인간은 외로운 존재임을 느꼈더라나?
아무튼 그래서 80키로 이하로 떨어뜨린 체중이었는데 워낙 입이 단 사람이라 다시 체중이 늘었다.
식구들이 보는 앞에선 절대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으니 남편의 체중은 지금도 비밀이다.
내 생각엔 다시 옛날 전성기로 돌아가지 않았나 싶다.
자꾸 와이셔츠가 적다고 투덜거리는 걸 보면.
남편은 등산을 즐긴다.
고등학교때 산악부 활동을 했을 만큼 산을 좋아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이산 저산을 찾아다니며 몇 시간씩 땀을 비오듯 흘리는데도 그 살은 줄어들 줄 모른다.
난 가끔 말하곤 한다.
"내가 해주는 대로만 먹으면 절대 살찌지 않을텐데,,,"
도대체 바깥에서 얼마나 맛있는 걸 혼자 먹는지 알만하다며 놀린다.
우리 집에서 유일한 뚱보가 남편이다.
이제 낼모레면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내 남자.
반백인 머리를 쳐다보면 지나온 세월이 서럽다.
왜 그렇게 아옹다옹 싸우며 살았나 싶어서.
더 이상 떨어져 있기 싫어 결혼이란 걸 했었는데 살아가면서 드러나는 건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이 많았다.
꼴도 보기 싫게 미울 때도 많았고, 당장 헤어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아이들 생각에, 친정부모 생각에 주저앉은 적이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그런 세월을 살면서 미운정 고운정 다 들어버린 내 남자.
이젠 사랑하면서 살수밖에.
아무튼 운동을 시작한 남편이 대견스럽다.
다섯 바퀴가 열 바퀴가 되고 열 바퀴가 스무 바퀴가 되는 그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고 싶다.
그래서 내 남자와 함께 나이 오십에 단축 마라톤에라도 도전해보고 싶다.
불가능하다면 꿈에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