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女子)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기억의 서랍에 차곡차곡 담아봅니다

별보다 더 반짝이는 그대

♡ 아 내......... ♡

남편이 없었던 '그 자리'

bell-10 2001. 1. 10. 15:40

아이를 셋이나 낳으면서 그때마다 아이의 아빠인 남편이 '그 자리'에 없었던 이야기를 할까한다.
요즘 산모들은 분만실에서 남편의 손을 잡고 분만한다지만
우리 때의 '그 자리'는 분만실 앞 아니면 병원 안 정도였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그 자리'에도 남편은 그때마다 없었다.

남편이 '그 자리'에 없이 첫딸을 낳았을 때 누군가 말했다.
첫아이 출산때 남편이 '그 자리'에 없으면 이상하게도 다음 번에 또 없기 마련이라고.
그때는 흘려들은 말인데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묘한 징크스였던 것 같다.

첫딸 때는 일부러 시댁과 친정이 있는 대구에 내려가서 아이를 낳았다.
몸조리해주러 어른들이 올라오시는 것보다 내가 내려가는 것이 훨씬 편리할 것 같아서였다.
예정일 며칠전이 시아버님 생신이라 남편과 함께 내려갔었는데 생신다음날 저녁 진통이 시작되었다.
시아버님 생신이 정월 대보름 전날이라 이날은 정월 대보름날이었다.
진통인 거 같다는 내 말에 시어머님께서는 "아들이면 괜찮지만 딸이면 이름 있는 날(대보름날을 말하심) 낳으면 안 되는데...." 하시는 거였다.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처음 겪는 일이라 이게 진통인지 어쩐지도 모르고 그냥 배가 아프니 곧 아이를 낳을 것만 같았다.
남편과 함께 다급하게 병원을 찾았고 친정엄마도 오시게 했다.
적잖은 나이였고 또 초산이라 진통이 오래될 것 같다는 병원이야기에
남편은 다음날 출근 때문에 밤기차를 타고 떠났다.
남편이 떠난 약 2시간쯤 후 그러니까 남편이 추풍령을 넘고 있을 즈음에 첫 딸을 분만했다.
다행히 다음날 새벽 3시쯤에 출산을 해서 이름 있는 날에 딸을 낳는 불상사는 없었다.

둘째딸 때에는 새벽에 진통이 왔지만 그래도 한번 경험이 있어서인지라
아픈 배를 참아가며 그 새벽에 빨래를 다해놓고 느긋하게 혼자 병원엘 갔다.
남편에게는 아이를 데리고 천천히 오라는 여유를 부리며.
남편이 자던 아이를 깨워서 데리고 왔을 때도 진통만 하고 있었는데
가까이 사는 친구 집에 잠시 아이를 맡기러 간사이 분만을 했던 것이다.
둘째까지만 해도 '이럴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만 했었는데 육년 후 막내를 낳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어머님께서는 혹시나 막내로 손자라도 보게 해드릴까봐 진작에 오셔서 진을 치고 계셨다.
예정일이 며칠 지났는데도 아무런 기미가 없었다.
노산이라 아이가 속에서 자라면 낳기만 힘들어진다기에 하루는 마음먹고 병원에 아이를 낳으러 갔다.
입원에 필요한 옷가지도 준비한 채로.
분만촉진제를 맞으며 종일 침상에 누워있는데 나보다 늦게 들어온 산모들도 다 한사람씩 차례로 분만을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종일 생으로 배만 아프다가 결국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부터 일부러 남편 따라 약수터도 다니고 5층 아파트를 수십 차례도 더 오르락내리락 하고 난 뒤 드디어 진통이 왔다.
집에서 진통을 많이 겪고 난 뒤 새벽에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는 노산이라 초산과 같이 힘들 거라며 엄포를 놨다.
날이 새자 남편은 시어머님을 모셔다 두고
다시 집에 있는 아이들 치다꺼리하러 잠깐 자리를 비웠고
그사이 나는 또 막내를 낳았다.

이런 우연이 어디 있을까?
하나도 둘도 아닌 셋 모두 남편이 없는 사이에 낳다니.
그것도 지방이나 외국 간 사이가 아닌 잠깐 자리를 비운사이에.
정말 그건 징크스였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결코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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