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女子)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기억의 서랍에 차곡차곡 담아봅니다

별보다 더 반짝이는 그대

♡ 아 내......... ♡

어슬픈 家出

bell-10 2000. 7. 14. 15:47
십수년 전 어느 날 홧김에 집을 나갔다 혼난 적이 있다.
함박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낭만적인 겨울날 밤.
나는 집을 나가 추운 길거리를 배회하다
별 다른 수가 없어 집으로 갔는데
아파트 현관문을 남편이 잠궈버린것이다.

물론 열쇠로 열 수 있는 부분을 잠갔다면
열쇠로 열고 들어갈 수 있었겠지만
열쇠 위에 장치되어 있는 고리를 걸어버린 것이었다.
큰애가 대여섯살 쯤 되어서 아이가 열어 줄 줄 알았는데
늦은 시간이라 잠이 들고 만 것이다.

밤늦게 현관문 밖에서 고리가 걸린 문틈으로 남편에게
문열어달라고 사정(?)하던 철없고 바보 같았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문제의 발단은 대부분의 부부싸움이 그렇듯
지금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시작되었고
동갑인 우리 부부는 누군가 양보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고
서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였다.

덩치에 있어서 남편에게 많이 밀리는 나는
남편이 소리라도 지르면 아무 말도 못하고 말아
항상 불만이 쌓여 있었다.
더구나 남편이 화나도 참고서
내 이야기를 다 듣는 자상한 성격도 아니니
나는 하고싶은 말을 다못하는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어쨌든 그날도 남편이 회사에서 1박2일로 놀러가서 찍은 사진에
여직원도 끼어있어 이것저것 묻고 하다가 싸움이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편을 꼼짝 못하게 구속하려는 내게도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지만
그 때는 나 아닌 다른 여자와의 접근은
공적인 일일지라도 상상하기도 싫었으니...
말도 안 되는 내 이야기에 급기야 남편이 화를 냈고
내맘을 몰라주는 남편이 야속하고 미워
눈오는 날 밤 집을 나오고 만 것이다.

문제는 처음 해보는 가출이라 사전에 아무런 준비도 않고
홧김에 나오는 데만 주력한 것이었다.
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가 상가에 나가보았지만
주머니에 든 단돈 몇천 원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아이쇼핑만 하고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별수 없이 집으로 간 것까진 좋았는데
믿었던 아이들이 자는 바람에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야속한 남편은 술을 한잔 했는 지
'한번 나갔으면 못 들어온다'는 말만 하면서
눈오는 추운 겨울밤인데도 문 열어줄 생각은 않았다.
정말 큰일이다 싶었지만
잘못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 다시 집을 나섰다.
아파트 길 건너 다방에서 쓴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주말의 명화를 다 보고 난 뒤 다시 집으로 갔다.

역시 문을 안열어주는 남편.
통금이 가까운 늦은 시간이라 문열라고 큰 소리도 못하고
아주 작은 소리로 애원(?)을 했는데
추운 바깥에서 한참이나 더 떨게 한 연 후에
겨우 남편이 문을 열어주었다.
그때의 그 안도감이란.
내 집과 내 아이들, 미운 내 남편까지도
소중한 생각이 드는 게 아닌가.

남편은 그 때
처음부터 내 버릇을 단단히 고치겠다는 생각이 있었을 거고
나는 그 이후로 '차라리 남편보고 나가라고 하면 했지
다시는 내가 집을 나가나 봐라'고 맹세하였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나보고 바보 같다며 집을 나갈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돈과 통장을 챙겨야된다고 충고(?)해 주었다.
경험 없이 처음 해보는 일이니 누가 알았나?

그 이후로 다시는 집을 나가지 않겠다던 내가
올해 계획된 가출을 시도하였었다.(칼럼 3호글)
하루만에 돌아온 가출이었고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두 번 다시는 하고싶지 않은 일이다.
서로 조금만 양보하고 이해하면 되는 일인데도
항상 나만 손해보는 것 같은 이 기분이
언제쯤 해소되어 나도 철있는 아내가 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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