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女子)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기억의 서랍에 차곡차곡 담아봅니다

별보다 더 반짝이는 그대

♡ 엄마(친정엄마)♡

엄마의 흰 머리

bell-10 2000. 7. 4. 10:14
칠팔년전부터 흰 머리카락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맨 처음의 발견은 시력이 너무 좋은 남편이 어느 날
'잠깐!'하더니 내 머리에서 흰 머리카락을 한 가닥 뽑아냈다.
멀리서 보니 무언가 반짝이더라나?
새치 하나 없이 지내던 터라 그 땐 정말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그 이후로 하나 둘 휜 머리는 늘기 시작했고
남편이 가끔 발견해 뽑아내곤 하던 흰 머리카락을
급기야 큰딸에게 용역(?)을 주게되었다.
처음엔 어쩌다 보면 겨우 한 두 개라
하나 뽑는데 거금 100원을 주었다.
용돈이 걸린 문제라 아이의 손은 하나라도 더 찾아내려고
열심히 내 머릿속을 헤쳐나가고.

일요일 낮이면 딸에게 머리를 맡기고 누워 아이의 손이
내 머리카락을 헤쳐나갈 때의 시원함(?)을 만끽했다.
가려움을 느껴 흰 머리카락 있는 곳을 용케 가리키는 나를
아이는 신기해하고 하나 뽑을 때마다 시원하다고 하는 나를
'아플 텐데...'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아이에게 머리를 맡기는 동안
나는 가끔 아련한 옛추억에 잠기곤 했다.

내 어머니가 내 나이쯤 되셨을 때 나역시
어머니의 흰 머리카락을 뽑아 드렸었다.
그때의 돈으로 하나에 1원을 주시던 어머니.
나도 우리 엄마에게 그 방법을 배운 건 아닌지.
엄마의 흰 머리카락을 찾느라 머릿속을 들춰가노라면
엄마는 연신 '어구 시원하다'를 연발하셨고
흰 머리카락 있는 자리를 손으로 용케도 짚으셨고
흰 머리카락을 뽑을 때면 더 시원하다고 하셨다.
그 때 나도 머리카락을 뽑으면 따가울 텐데
왜 시원하다고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는 그러셨다.
딸인 내가 엄마의 흰 머리카락을 뽑아드릴 때만큼은
너무 편하고 시원하다고 하시면서 가끔씩 넌지시 나를 부르셨다.
'리나야, 엄마 흰머리 좀 뽑아줄래?'
(엄마는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내 이름이 돌림자가 들어가
이쁘지 않다 시며 세례명중 뒤의 두자만 부르셨는데
나는 내 이름 석자를 유치원에 가서야 비로소 듣게 되었다.
그때 내 이름 석자가 남의 이름인양 얼마나 생경했는지)

이제 세월이 흘러 우리엄마는 흰머리가 너무 많아
검은머리를 뽑는 게 빠른 할머니가 되셨고
이젠 내가 엄마의 그때 나이가 되어 내 딸을 부른다.
'금지야, 엄마 흰머리 좀 뽑아줄래?'하며.

엄마가 왜 내게 머리를 맡기시고 시원하다고 하셨는지도
알게 되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너같은 딸 하나만 낳아 키워보라'시던
우리 어머니들의 말씀.
우리가 엄마가 되어서 어머니의 세월을 살면서
그 뜻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게 어디 한 두 가지인가.

딸아이가 뽑아주던 나의 흰 머리카락도 일주일 주기로
숫자가 하나 둘 자꾸 늘어 용역비(?) 지출이 만만찮았다.
하나에 50원, 20원, 10원으로 줄여도
한번 지출이 몇 백원이 될 만큼 자꾸 늘어만 갔다.
어느 날 내가 딸아이에게
'엄마 이러다 대머리 되겠다. 이제 그만 뽑을까?' 했더니
기특하게도 아이는
'엄마 돈주기 싫어서 그러시죠? 나 이제부터 무료 봉사할게요'했다.
엄마가 늦둥이로 낳은 동생에게
머리 하얀 할머니 같은 엄마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며.
사실은 저도 늙은 엄마는 싫었겠지.

이제 그 딸이 고3입시 생이다.
보충수업이니 야자니 하면서 일요일도 없이 공부에 몰두하느라
아이 얼굴 볼 시간도 없게 되었다.
공부에 바쁜 딸을 붙들 수도 없어 몇 달을 그냥 두었더니
어저께 언뜻 본 앞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수북하였다.
그 동안 딸 덕에 바깥에 나가도 사람들이 내 나이로 안보고
몇 살 아래로 봐주었는데 이젠 정말 나이보다 더보게 생겼다.
이상하게 둘째딸은 다른 건 언니보다 다 잘하는데
흰머리 뽑는 솜씨는 젬병이다.

이젠 나도 우리엄마처럼
흰머리보다 검은머리를 뽑는 게 빠른 나이가 되어 가는 중이다.
그게 인생이겠지만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인 우리 막내아들은 어떡하나?
할머니 같은 엄마를 두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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