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버스를 복잡하게 만드는 사람들 중에 나도 한몫을 하기 시작한 지 어언 다섯 달 반이 넘었다.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번호의 버스만 타다보니 기사아저씨들의 얼굴도 제법 낯이 익었고 그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들 중 낯익은 얼굴이 보일 정도다.
어떤 사람 앞에 서면 어디서 앉을 자리가 생기는 지도 짐작이 가능해져서 내리는 곳까지 서서 가는 경우는 거의 없을 정도로 자리잡기 도사도 되었다.
자리잡기 도사라 해서 행여 자리잡으려고 안달을 하는 늙수그레한 아줌마를 상상하시진 말아달라.
마음은 아직 청춘인지라 노약자에게 자리 양보는 누구보다도 잘 하고 있으니까.
아무튼 매일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이 어느 날 아침엔가 한가지 변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계절이 변함에 따라 사람들의 옷차림이 바뀐 것이냐구요?
천만의 말씀!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는 오락실이 있다.
꼬마들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오락실 안에서 게임을 즐기는 곳으로 보이는데 그 오락실 앞 길가에는 갖가지 미끼 오락기계들이 있다.
인형 뽑기, 펀치자랑하기 등의 몇 가지 기계가 길가에 죽 늘어서서 아침 일찍부터 소리를 지른다.
"안녕하세요?"
"한번 해 보시겠어요?"
"어서 오세요"
낯간지러운 소리를 녹음해두고는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붙잡으려 애쓰는데 정작 그 기계소리를 듣고 아침부터 오락실에 들리는 사람이 과연 몇일까 싶을 정도로 기계 소리가 애처롭기까지 하다.
매일아침 그 소리가 '공해중의 공해'라고 생각하며 다니던 중 오늘은 한참만에 버스가 오는 바람에 좀 색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형~!! 동전 있어?"
"형~!! 그냥 가면 숏다리야!"
"형~!! 그냥 가면 재수 없어!"
먼젓번까지는 그래도 "~~세요"라며 경어(?)를 쓰더니 이젠 반말까지 하는 기계가 등장을 한 것이다.
그 소리에 뒤돌아 서서 소리내는 기계를 살펴봤더니 '2002 월드컵'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공 차는 기계였다.
여태껏 매일 소리지르던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의 소리는 그 반말지거리에 묻혀버리고 오직 그 기계만이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사람이 그 앞을 지나가면 센스에 의해서 소리를 내나 싶어 일부러 지나가 보기도 했지만 사람이 지나가지 않아도 일정한 간격으로 떠들고 있었다.
사람들의 주위를 끌려고 '이젠 기계까지 과격한 소리를 하게 만드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했다.
워낙 소음공해에 만성이 된 탓인지, 출근길이 바빠 듣고도 못 들은 체 지나가는 것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스 오는 쪽만 쳐다보는 출근길 풍경.
이다음엔 어떤 소리를 내는 오락기가 등장할 것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