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혜지에게♥
늘 착하기만 하고 언제나 엄마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랑스런 내 딸 혜지야.
네게 이렇게 긴 편지를 써보는 건 처음이구나.
어미의 자식사랑에 대해 흔히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표현들 하지.
물론 아픈건 사실이야.
하지만 이 엄마는 겨우 자식 셋을 키웠는데도 분명 아픈 정도가 틀리다는 걸 깨달았단다.
언니와 두 살 터울로 태어난 넌 어쩌면 그리도 순둥인지,,,,,
엄마 곁을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울어대기만 하던 언니 때문에 아기 키우는 게 힘든 줄만 알았던 엄마는 너처럼 순한 아기가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기만 했었지.
젖 한 통 먹이고 나면 서너 시간씩 곤히 잠자고, 아무리 열이 높아도 보채는 법이 없던 너.
널 만져본 후에야 불덩이 같던 네 몸에 체온계를 꽂았던 적도 여러 번인 정말 부끄러운 엄마였었지.
여섯 살이나 채 되었을까?
바깥에 놀러 나갔던 네가 동네 아줌마가 주셨다며 새우깡 한 봉지를 들고 왔었단다.
알고 보니 유모차를 밀어주면서 아기를 돌봐준 대가였었지. 기억나니?
동네 꼬마들을 유난히 잘 돌봐주어 아줌마들에게서 인기가 짱이었던 너.
너를 칭찬해주는 말을 들으며 이 엄마의 어깨가 으쓱했던 적도 여러 번이었지.
그때의 장래 희망이 고아원 선생님이어서 엄마는 얼마나 놀라고 기특했었는지 모른다.
옷만 해도 그랬단다.
변변한 새 옷 한번 사주지 못하고 늘 언니 옷만 물려 입혔었지.
중. 고교 마저 언니와 같은 학교라 교복까지 물려 입게 되었단다.
분명 새 교복을 입고 싶었을 텐데도 언니교복이라 좋다면서 네게는 헐렁하던 교복을 입고서도 명랑하게 웃던 너.
경제적인 이유로 교복을 물려 입히면서도 절약운운하며 합리화시켰던 엄마의 속마음을 넌 이미 읽고 있었던 게지.
공주병 언니와 남들이 다 귀하다고 말하는 터울 진 남동생 사이에 끼어 늘 양보가 몸에 밴 너.
그렇게 착하고 이뿐 네가 엄마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라는 걸 넌 아니?
언니나 동생과는 달리 출생직 후 발병한 아토피 피부염으로 지금껏 고생을 하면서도 한번도 가렵다고 짜증을 부린 적이 없었지.
얼굴이며 목이며 피부염이 발생했던 부위가 색소침착으로 거뭇거뭇한데도 무신경한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너.
고3이면 외모에 신경을 쓰고도 남을 나이니 얼마나 속 상하겠니.
차라리 다른 아이들처럼 왜 나만 이렇게 낳았느냐며 울고 보챘다면 엄마의 마음이 덜 아플 지도 모른단다.
이런 네가 네 살 되던 해 시력까지 나쁜걸 발견하게 되었었지.
네 얼굴보다 더 큰 안경을 끼고 좋아하던 네 모습이 엄마의 눈에는 귀여운 잠자리 한 마리였단다.
아이들과 놀다가 부러진 안경다리가 몇 개였더라?
다른 아이와 부딪쳐서 하마터면 눈까지 다칠 뻔했던 기억들을 너도 잊지 않았지?
너무 어릴 때부터 안경을 끼게 되면 콧대가 낮아진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금의 네 콧대가 정말 낮은걸 넌 아니?
넌 네 말에 의하면 못생겼고 너희 반에서 제일 작은키라지?
언젠가 네가 너보다 예쁘고 키도 훨씬 큰 언니에게 이렇게 말했었지.
언니가 먼저 태어나면서 좋은 거 모두 뺏어갔다고.
넌 그때 농담처럼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게 네 본심이란 거 엄마는 잘 안단다.
그렇지만 혜지야, 넌 가장 소중한 걸 가졌단다.
바로 너만이 가진 고운 심성이야.
엄마는 그게 제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한번도 네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지.
언제나 네게 언니나 동생에게처럼 무심한 척 엄마 마음을 한 겹 감싸서 널 대했단다.
그래야 네가 지금보다 더 씩씩하고 강하게 클 거란 믿음 하나로.
혜지야.
고3 생활 정말 힘들지?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지쳐 돌아오는 네 가냘픈 어깨를 엄마는 한번도 포근히 감싸준 적이 없구나.
직장 다닌다는 허울 하나로 간식 한번 제대로 챙겨준 적 없는 엄마.
늦은 밤 돌아와서 출출해진 허기를 네 스스로 해결하도록 방치한 엄마.
설거지까지 미뤄놓아 네가 한 적도 여러 번인 엄마.
이 자격미달 무늬만 엄마에게 넌 언제나 "제가 할 게요."란 말로 엄마를 편하게 해주려고 애썼지.
네가 유치원 졸업하던 해 태어난 남동생 덕에 초등학교 일 학년부터 준비물 한가지도 엄마 손 빌리지 않고 챙겨갔던 너.
고사리 손으로 문제집 채점까지 네가 직접 했었지.
그런 너이기에 지금의 힘든 시기도 슬기롭게 잘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급하게 서두르지도 말고 너무 욕심 내지도 말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지금처럼 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
언제나 그 자리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있어주었으면 하는 것이 엄마의 바램이란다.
혜지야.
마지막으로 딱 한마디만 할 게.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게 건강인 거 잘 알지?"
2003년 4월 깊은 봄 어느 날
-널 진심으로 ♥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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