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女子)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기억의 서랍에 차곡차곡 담아봅니다

별보다 더 반짝이는 그대

♡ 또 다른이름... ♡

하나뿐인 동서 이야기

bell-10 2000. 9. 13. 22:18
오늘은 하나뿐인 동서 이야기를 할까합니다.
제가 결혼후 1년도 채 안되어 동서를 보았습니다.
시동생과 중매로 결혼한 동서는
시동생보다 한 살이 많아 저와는 두 살 터울입니다.
남편직장 때문에 멀리 분가한 저와는 달리
동서는 처음부터 시댁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시할머니를 비롯해 시부모님, 미혼인 시누이 하나.
이렇게 많은 식구들과 살게 된 동서는 남매를 낳아 기르며
시댁 살림은 물론 시댁의 대소사까지
멀다는 핑계로 잘 참석치 못하는 절 대신해서
맏며느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남매만 자란 저와는 달리 다섯 남매의 넷째인 동서는
시댁 식구들이 다 모이는 자리에서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도 잘하고
시누이남편들과 농담도 잘 주고받는 등
제가 볼 때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맏이인 저는 편히 살고 동서는 시댁에서 살고 있으니
자연 동기들 간에도 동서를 더 받드는 그런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저 역시 맏이인 제가 할 일을 다하는 동서보기가 미안하여
가끔씩 시댁에 가면 일 한가지라도 더해 주려고 애쓰기 마련이었습니다.

전 시댁에 가있는 그 며칠만 힘이 들면
집에 와서는 누가 뭐랄 사람 아무도 없으니
늘어지게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일을 하곤 했습니다.

어른들은 시간 맞춰 식사를 하시니 늦잠을 잘래야 잘 수도 없고
새벽같이 일어나 식사준비를 하는 동서 옆에서
뭘 거들어야 할지 모른 체 허둥대었고
무엇 하나 해도 일일이 동서에게 다 물어봐야 할 수 있었습니다.
시어른들의 식성이며 습관까지도 동서는 척척 아는데
저는 꿔다 논 보릿자루 신세였습니다.
그만큼 저는 맏이인데도 시댁과 멀리 떨어져서 편케 살았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그러다 시할머님께서 중풍으로 쓰러지셨고
그 3년 수발을 손자며느리인 동서 혼자서 다 들었습니다.
대소변도 못 가리시는 할머님의 병시중을 다 든 동서.
시어머님이 계셨어도 모든 건 다 동서 차지였고
어쩌다 가보는 저와 다른 동기들은 구경꾼에 불과했습니다.

사실 시아버님이 공무원이셔서 지방으로 전근을 자주 다니시는 바람에
시댁 7남매들은 모두 할머님이 키우셨습니다.
결혼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제게 말하더군요.
"엄마가 돌아가셔도 눈물이 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할머니는 돌아가시면 안 된다"고요.
그만큼 할머님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단 것이었습니다.

그런 남편은 물론 다른 시누이들 그 아무도
병환중인 할머님에게는 구경꾼 밖에 안되었습니다.
어쩌다 할머님이 실수하신 것도
동서 아니면 아무도 치우거나 씻어드릴 엄두도 내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가 뵐 때에는 그런 일이 없기도 했지만
막상 그런 일 이 있다해도 저역시 외면을 하고 말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다 할머님이 돌아가신 날.
멀리 떨어져 있던 저희 부부는
위독하시단 이야기를 듣고 내려가 임종을 지켜봤는데
그 시간 동서는 너무 힘든 나머지 가까이 있는 맏시누이 집에
잠깐 쉬러 갔다가 할머님의 마지막을 못 뵈었습니다.

그토록 오랜동안 할머님과 함께 했으면서도
막상 돌아가시는 순간은 비켜간 운명.
장례를 치르면서 내 부모가 돌아가셔도 그렇지는 않을 정도로
너무나 애통해 하던 동서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 돌아가신 몇 년 후 여름휴가를 맞아
시부모님과 동서 내외, 조카를 태우고
시아버님이 운전하시던 차와 츄레라가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그 사고로 다른 식구들은 유리파편에 긁히는 정도의 부상을 입었을 뿐인데
운전석 뒷자리에 앉아있던 시동생은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말았습니다.

사고소식을 듣고 달려가면서 너무나 큰 사고라
다른 식구들도 성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정말 생각보다는 멀쩡한 것이 믿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동생은 사망이라니...
이 또한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시동생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또다시 상복을 입고 서러워하던 동서.
남편과 함께 가겠다며 관을 붙들고 오열하던 동서.
벌써 3년전의 일입니다.

그후에도 동서는 계속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고있습니다.
남편이 있을 때는 분가하고 싶다고 하겠지만
남편이 없는 지금 모시던 시부모님을 못 모시겠다는 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며 시집살이를 자청하는 동서.

지금도 동서는 몸이 불편하신 시어머님의 며느리 노릇은 물론 딸처럼 살고 있습니다.
어머님께서도 "쟤는 며느리가 아니라 딸이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십니다.
어머님의 손발톱을 다 깎아드리고 찜질방이며 어디며
항상 불편하신 어머님을 모시고 다니는 동서입니다.

너무 애쓰는 동서를 보다 못해 막내 시누이가 한 말이 있습니다.
"언니는 전생에 사냥꾼이고 우리식구는 언니에게 잡혔던 동물들인가 보다.
그러니 지금 그 업을 다 갚느라고 이 고생이지"라며
요즘 며느리 같잖은 시집살이를 하는 올케를 고마워합니다.

올 추석에도 애들 핑계삼아 늦게 가서는
동서가 다 준비해 놓은 재료를 가지고
그저 전이나 부치고 뒷설거지만 하고 온 저입니다.

그래도 시집살이는 시집살이인지라 심신이 힘들 때가 많을 텐데
묵묵히 살고있는 동서의 고마움을 알면서도
가끔은 시집 식구들의 동서에 대한 총애에
은근히 속이 상하는 정말 못난 인간이 저입니다.

행여라도 시부모님께서 맏이인 저희와 시시겠다는 말씀을 하시는 날이 온다면?
당연히 모셔야된다는 맏며느리의 마음가짐이 항상 있으면서도
그런 날이 없었으면 하고 바라면서 사는 저는 정말 동서의 나쁜 동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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