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女子)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기억의 서랍에 차곡차곡 담아봅니다

별보다 더 반짝이는 그대

♣女子의 이름으로♣

아줌마들의 화려한 변신

bell-10 2002. 2. 9. 22:28
큰아이 초등 1학년 때 같은 반에서 함께 새마을 어머니회를 하던 네 엄마들.
햇수로 따지자면 14년째 알고 지내는 사이니
멀리 있는 형제보다도 오히려 나은 사이가 아닌가 싶다.
아이의 학년 반을 딴 일육회란 이름으로 지금까지 만나오면서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숨김없이 하는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매달 한번씩 집집마다 돌아가며 점심을 내는 모임이었는데
얼마 안 있어 직장에 나가는 엄마가 생기면서 저녁모임이 되었다.
집안 일만 알던 엄마들이 저녁에 만나 외식한 뒤 노래방도 가고
그 당시는 정말 획기적인 일이었다.
식구들과는 상관없는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는 그 재미란,,,,

처음 몇 년 동안은 회비 없이 모이다가 어느 해부턴가 매달 3만원씩 내기로 했다.
식사대 외에는 모두 적금을 들어 모은 게 벌써 천만 원이 넘었다.
아이와 엄마의 생일날엔 작은 선물도 해주고
아이들 중학교 입학기념으로는 손목시계를 사주고
고등학교 입학 때는 교복도 맞춰주고
일년에 한번씩 가족과 함께 외식도 하고
가끔 유용한 가정용품까지 사면서도 제법 큰돈이 모아진 것이다.

목돈을 모아 꼭 뭘 하리라고 정한 것은 없지만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계속 모으고 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모임 날이었다.
며칠 있으면 구정이니 모인 김에 구정선물이라도 하나씩 사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찾은 근처 대형 쇼핑센터.
이것저것 뭘 살까 두리번거리다가 발길이 멈춘 곳이 준보석 가게였다.

평소 회비로 고가의 제품을 사본 적이 없는 엄마들이
이날 따라 보석가게 앞을 떠날 줄을 몰랐다.
그래서 고른 것이 목걸이.
동그란 반구 모양에 작은 큐빅이 촘촘히 박혀있는데 메달가격만 25만원.
세상에,, 그럼 네 명이면 백만 원!!

그런데 그것과 세트인 반지도 탐나는지 너도나도 끼어보는 엄마들.
평소 거추장스러워 반지를 전혀 끼지 않는 나는 별로였지만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히 따라 반지까지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러다가 '이왕이면,,,'하면서 똑 같은 모양의 목걸이까지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목걸이를 주문하는 것으로 그쳤다면 다행인 일.
그 목걸이가 귀를 뚫어야 예쁜 모양이라
셋 중 유일하게 귀를 뚫지 않은 한 엄마의 귀까지 뚫고 말았다.
졸지에 가게종업원에게 끌려가 생각지도 않던 일을 당한 엄마.
그런 일은 엉겁결에 해야 한다며 깔깔거리는 나머지 세 엄마.
누가 봤으면 저 아줌마들 왜 저러나 했을 거다.

그리하여 뜻하지 않게 이백만 원이 훨씬 넘는 거금을 쓴 우리 넷.
모두 어리벙벙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었다.

아, 물론 부르는 대로 다 주고 산 우리들이 아니다.
정가에서 깎고 또 깎고, 더 이상 깎아주지 않는다고 할 때까지 깎았다.
그러고도 사은품으로 상품권을 10만원이나 받았으니
거금을 쓰고도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그 상품권으로 남편과 가족들을 위해 다시 알뜰쇼핑을 한 후에야 귀가한 아줌마들.
비록 고가사치품이 아닌 준보석이지만
14년 만에 오직 자신만을 위해 준비한 그 귀금속을 찾는 날.
그 날 우리의 화려한 변신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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