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子의 이름으로♣
2002 월드컵
bell-10
2001. 10. 15. 06:50





큰딸이 2002월드컵 자원봉사자로 선발되었다.
아직 최종적인 확정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 달말 경 발대식을 치른다니 거의 된 거나 다름이 없다.
그렇다고 영어나 다른 외국어에 능통하다고 생각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저도 제 분수를 아는지 지원한 분야가 '검표'란다.
지난 5월인가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가 났을 때
이곳에서 가까운 수원에서도 월드컵을 치른다기에
큰딸에게 생애 두 번 다시없을 기회니 한번 참여해 보자고
넌지시 말을 꺼냈었다.
그때 정작 큰딸은 못한다고 했고
오히려 나이가 어려 자격도 없는 작은딸은 해보고 싶다고 했었다.
나도 해보고 싶었지만 큰딸을 꼭 참여시키고 싶은 생각에
"월드컵 같은 행사를 두 번 다시 보겠느냐,
외국어를 못하면 어떠냐,
엄마는 청소원으로라도 꼭 할거다........"며 며칠을 꼬드겼다.
그제야 딸아이에게서 '그럼 해볼까?'하는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동사무소나 구청에서 지원서를 받아 제출해야 했는데
자꾸 잊어버려 드디어 모집시한 마감이 임박했다.
그때쯤 나는 직장을 나가게 되었고
에미가 하지 않으면 함께 안 할 줄 알았던 딸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지원서를 받아왔다고 했다.
함께 지원하겠다던 친구 대부분이 지원서를 내지 않았는데도
혼자 지원서를 낸 딸아이는 꼭 되리란 기대를 않는 눈치였다.
경쟁률도 그렇거니와 면접을 본다니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큰 행사에
뽑힐 리 없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1차 서류 심사에 통과되었다고 좋아하더니 9월 초엔가 면접을 보러 간다고 했다.
생전 가보지도 않은 곳이라 데려다 달라고 했지만
그날따라 일이 있어 혼자 찾아가라고 했다.
한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린데 두어 시간 전에 길을 나선 아이.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찾아간 아이.
어려서부터 자기만 아는 아이라고 가끔 구박을 했는데
참 신통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날 생애 처음으로 면접을 치르느라 너무 떨렸다고 했다.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들이 저더러 "00씨~"라 부르며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그렇게 떨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월드컵 기간동안 중간고사가 겹칠텐데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도 받았는데
학점 놓쳐도 상관없다는 대담한 발언까지 했다나, 어쨌다나.
그 날 간단한 기념품과 교통비 만원도 받았다며 좋아했다.
그 후 어느 날 밤엔가 다들 조용히 하라고 하더니
전화통을 붙들고 영어로 몇 마디 나누었다.
무슨 일인가 궁금했더니 그것 역시 선발과 관련된 일이라고 했다.
최종적으로 검표분야를 맡게 되었다는 통지서를 보고는
"야, 우리 딸 덕에 월드컵 공짜로 구경하게 되었구나"하고 슬쩍 떠봤더니
"엄마는, 그런 게 어딨어요. 공정하게 해야죠"라며 눈을 흘기기까지 했다.
아무튼 우리 집 공주병 환자라고 놀림을 받는 큰딸이
세계적인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게 된 획기적인 사실에
괜히 에미까지 덩달아 좋아하는 것을 보면
나 역시 왕비병 환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