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친정엄마)♡

♣ 화 청 회 ♣

bell-10 2006. 9. 19. 11:38

 

 

 

모임이 많기로 소문날 정도인 제게 정말 각별한 모임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하여 '화. 청. 회'


얼핏 들으면 꽃과 관련된 이름으로 들릴 지 모르지만 사실은 요즘 유행하는 삼행시로 하자면

화~ 화 장 실

청~ 청소하는 엄마들이 모인

회~ 회(會)랍니다.


모임의 유래를 설명드리자면 이야기가 좀 깁니다.

지금 고3인 큰 애가 초등학교 2학년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0년전 그 때 우리 아이가 2학년이 되면서 바로 학급반장으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생일이 2월28일이라 덩치도 쬐끄만한 게 얼마나 기특하든지 그 땐 정말 좋더라고요.


어쨌든 걱정스러웠지만 한 학기를 잘 마쳤고 그 때 열두반의 반장 엄마들이 계속 만나게 되었습니다.

반장 때는 학급일로 가끔 선생님 도우느라 한학기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는데 반장임기가 끝나고 나니 학교일은 없어졌지만 한학기동안 정이 들었던 엄마들이 누군가의 제의로 계속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3학년이 되던 해 어느날 엄마들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았던 한사람이 학교화장실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당시 학교 화장실을 가보면 수세식이지만 막힌 데가 많았고 애들에게 청소를 맡겨서인지 냄새는 물론 청소상태가 불량해 어떤 아이들은 생리현상을 참았다가 집에 와서야 해결할 정도 였습니다.


그러니 그 엄마 이야기는 학교에다가 쓸데없는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엄마들이 되지말고 우리 자식들이 다니는 학교 화장실을 한번 깨끗하게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누구에게 자랑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니 선생님들까지 퇴근한 후에 하자고 하면서요.


처음엔 공동으로 쓰는 학교화장실의 불결함을 너무도 잘아는 우리들인지라 사실 선뜻 좋다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아이들에게 제일 필요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내집 화장실 청소도 엄마들 몫이니 못할 것도 없었죠.


그렇게 해서 엄마들이 처음으로 학교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허드레 옷을 입고 마스크를 하고 고무장갑을 끼는 등 중무장을 하고 호스와 수세미, 락스, 염산까지 준비해서 어느날 화장실과 전투하는 마음으로 찾아갔습니다


개교한지 10년이 가까운 화장실을 한번도 대대적으로 청소한 적이 없었는지 자세히 보니 변기마다 누런 더께가 덮혀 있는 것이 토악질이 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엄마들은 강하죠.


변기마다 염산을 부어 더러움을 어느정도 녹인 뒤 그 더러움과 두시간 이상을 싸우며 해가 질 때쯤에야 겨우 청소를 마쳤는데 그 더럽던 화장실에서 깨끗한 냄새가 나지 뭡니까?

정말 제가 그 때까지 한 일 중에서 가장 보람있었던 일이라고 한다면 그동안 제가 너무 아무일도 안하고 살아온게 드러나겠죠?


그날 집에 와서 엄마들이 이구동성으로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내일 학교가거든 화장실에 꼭 한번 가봐라."

다음날 학교 갔다 온 아이들은 또 하나같이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엄마, 화장실에서 냄새가 하나도 안 났어요."라고요.


그 이후로 엄마들은 한 학기에 두어번쯤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되었고 처음에 힘들게 해둔 덕에 두 번째부터는 한결 수월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청소를 더 자주 해주었더라면 더 깨끗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청소도 교육의 한 부분이라고 얘기하며 좀 게으름을 피운거죠.


한 삼년 가까이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도중에 이사도 가고 그냥 나오지 않는 엄마들이 있기도 해서 지금까지는 여섯명만 남았습니다.

여섯의 엄마들은 서울은 물론 분당 군포 안양 등지에 제각각 떨어져 살게 되었지만 매달 한번씩 꼬박꼬박 집집마다 돌아가며 모여 아이들 커가는 얘기며 교육 얘기, 살림 얘기 등으로 만날날만 손꼽는 사이가 되었답니다.


1년에 한번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대견하답니다.

어려운(?) 일을 함께 한 사이라 더욱 돈독해 진지도 모르죠.


또 가장 중요한 한가지.

그동안 십 년 가까이 모은 회비만도 얼마나 많다고요.

액수는 비밀이지만 아이들 대입이 끝나면 부부동반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답니다.

부러우시죠?


-2000년 6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