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친정엄마)♡

가슴 철렁한 날

bell-10 2006. 4. 6. 16:18

 

그저께, 볼일이 있어 수원을 다녀오는 중이었다.

지지대고개(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가 잠들어있는 현륭원을 바라보며 더딘 발걸음을 재촉하던 긴 고개, 수원시와 의왕시의 경계에 있음)를 막 넘어서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마침 신호대기중이라 얼른 받았다.

 

"규동이 어머니시죠?"

젊은 여성의 목소리다.

"그런데요?"

아들 이름을 들먹이면서 걸려오는 전화는 거의가 학원이나 교재 선전 전화라 시큰둥하게 맞받았다.

"저 규동이 담임입니다~"

"어머나!!"하는 소리가 내입에서 절로 나옴과 동시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고구나!!!'하는 직감이 들면서 가슴이 방망이질을 해댔다.

 

담임선생님 말씀으로는 계단에서 넘어져서 이마를 다쳤는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좀 많이 부어서 보건선생님이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는 거였다.

알겠노라고, 지금 바로 가겠노라고 전화를 끊었지만 계속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걱정할 정도가 아니라면 보건실에서 그냥 치료하면 되지, 왜 엄마에게까지 전화했을까?

병원에 가봐야 할 정도라면 대체 어느정도나 다쳤을까?

계단에서 넘어졌다면 혼자서?

아니면 누가 떠밀어서?

아니면 누구랑 싸웠나?

 

별의별 생각이 떠올라 뛰는 가슴이 진정되지를 않았다.

얼마나 빨리 달려갔던지 보건실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 보건선생님께서 하는 말씀이

"어머니, 날아오셨나봐요~"였다.

 

아들 꼬락서니를 보니 이마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이고 그 위에 얼음주머니까지 얹은 채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다친 부위가 정말 많이 부어있었다.

선생님이 반창고를 떼내어 상처를 보여주시는데 얼음주머니 덕인지 피는 멎어있었고 어린아이 주먹만한 혹 위에 가로로 2센치미터 정도가 찢어져 있었다.

 

선생님 말씀대로 그리 심하지는 않았지만 놀란 가슴은 그때까지 벌렁거리고 있었고 보다못한 선생님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다며 냉수 한 잔을 건네주셨다.

그 물을 받아마시고 나서야 조금 진정되는 가슴.

그제서야 아직 점심도 먹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얼굴부위라 성형외과로 가는게 좋겠다는 말씀대로 성형외과를 찾았다.

교복은 입은 채로 남들 다 공부하는 시간에 이마가 찢어져서 병원을 찾은 아들과 그 엄마.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사내아이를 키우다보면 부러지고 꿰매는 사고를 더러 많이 겪는다던데 이 녀석은 그방면에선 얌전하게 커왔다.

참, 아니다.

유치원때 장난치다 엎어져 생니가 잇몸을 뚫고 들어간 사고가 있긴 있었다.

그때도 입안 가득 피를 흘리며 울던 녀석 때문에 얼마나 혼비백산했었던지....

 

레이저시술대에 누운 아들에게 간호사가 다가가 상처가 난 이마 전체에 벌거스름한 소독약을 바르더니 구멍 뚫린 초록색 수술덮개로 얼굴을 덮어 씌웠다.

아직 의사는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눈부터 가려 놓았으니 무서운 생각이 들겠구나...싶어서

"엄마가 손 잡아줄게~"하고선 손을 꼭 잡았다.

녀석의 손아귀에도 힘이 꽉 주어졌다.

'엄마 없으면 안되겠지? 앞으로 잘해, 짜샤~!!'

 

이윽고 의사가 나타났고 마취주사를 두어대 놓고선 바로 봉합에 들어갔다.

의사가 좀 젊어보인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바늘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봉합을 마친 의사도 이마 정중앙이라 흉터가 완전히 감춰지진 않을거라고 말했다.

'자기 실력이 모자라서 그런건 아니고?'

일부러 성형외과를 찾았는데 흉터가 남는다고 하니 너무 속이 상했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거니 어쩌랴...

 

혹시 어지럽거나 메스꺼운 증세가 있으면 뇌사진을 찍어봐야하니 아이의 상태를 며칠 잘 관찰해야하며, 머리가 울리지않게 뛰어다니지 말란 주의사항도 들었다.

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녀석이라 며칠 좀이 쑤시겠군.

 

그날 녀석은 마취가 풀리니 이마가 뻐근하다며 결국 학원을 빼먹었다.

아파서 드러누웠으면 이해나 되지, 컴퓨터로 게임만 열나게 하던 녀석. 

'어이구,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이마 때문에 내가 참는다, 참어.'

그동안  핑계거리 없어서 빠지지않고 가야했던 학원을 하루 빼먹은 기분이 어떨까?

 

그래도 아들아, 이만하길 정말 다행이다.

앞으론 사고치지 말고 좀 평범(?)하게 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