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친정엄마)♡
피 아 노
bell-10
2001. 4. 24. 22:20
큰딸이 연주하는 거실의 피아노에서 쇼팽의 '녹턴'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감미로운 멜로디라 저도 듣기를 즐겨하는 곡입니다.
오늘은 토욜이라 강의가 없는 날.
이런날은 해가 하늘 중천에 뜰때까지 일어나는 법이 없는 아이였는데 웬일인지 모르겠네요.
큰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여섯 살이었습니다.
생일이 빨라(2월생) 다른 아이보다 한 살 어리게 유치원에 입학시키면서
첫아이에 대한 기대감에 피아노 학원부터 등록을 했습니다.
지금의 눈높이의 전신인 공문수학도 그때부터 시작했고요.
자식을 키우면서 대부분의 부모가 한번쯤은 느껴본다는 아이의 천재성.
큰딸아이도 예외는 아니었죠.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TV에 나오는 광고의 글귀를 눈여겨 봤는지
길거리 간판을 쳐다보며 '엄마, 저 글자는 새우깡의 새'라고 말한 것이 네 살.
지금도 그때의 감격이 되살아 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엄마의 착각이었습니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서 얼마동안은
선생님의 칭찬(나중에 다 하는 소리임을 알았죠) 속에서 아이도 열심히 하더군요.
아이가 체르니라는 것을 치기 시작할 무렵에
급기야 무리를 해서 좁은 집안에 피아노까지 들여놓았습니다.
방안 가득한 피아노 앞에서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피아노를 치는 것을 보는 엄마의 심정.
오로지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어려워지는 피아노.
샾이나 플랫 따위가 서너개씩 붙은 악보를 보면
저도 머리에 쥐가 날 정도인데 그 어린 머리는 더했겠지요.
물론 점점 넓어지는 음의 간격을 소화하기에는 손도 작았고요.
그래서인지 아이는 점점 싫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인내심이 적은 아이라 단정짓는 엄마의 욕심에
아이를 윽박질러도 보고 달래보기도 했습니다.
일정수준까지는 다른 아이들보다 오히려 빨랐던 아이가
점점 배우는 속도가 느려지니
엄마로서는 애가 탈수 밖에요.
아이가 하기 싫다면 한달이나 두달 정도 쉬게도 했고
방학이면 할아버지가 계신 시골에 다녀온다는 핑계로 또 쉬고,,,,
그러다가 육개월까지 쉬게 한 적도 있었답니다.
결국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체르니 40번을 다 마치지 못하고 말았지요.
세 개 번호가 남았기에 중학교 진학한 후에도 가르칠까 하다가 저도 포기해버렸답니다.
아이가 피아노 치기를 싫어하던 그 당시
아이가 잘 따르는 아이의 고종사촌 언니(당시 대학생)까지 동원해
아이를 설득한 적도 있었는데 다 부질없는 짓이었습니다.
그 조카애의 말이 '나도 어릴 때 피아노가 치기 싫어서 그만뒀는데 다 커서 생각하니
그때 울엄마가 때려서라도 시켰으면 좋았을걸'이라는 말을 했거든요.
그말을 들으니 아이의 의지가 부족할 때 때로는 엄마의 고집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피아노를 접은 딸 아이가
중,고등 수험생 시절에 어쩌다 시간 여유가 생기면 한번씩 피아노 앞에 앉더군요.
한 옥타브를 짚는 건 문제도 아닐만큼 손도 커져서인지 시키지 않아도 치곤 하던 피아노.
스스로 하고싶어 피아노를 치는 딸 아이의 표정은 힘든 공부에서 해방된 양 마냥 밝기만 했고
내 귀에도 익숙한 재즈선율을 듣노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곤 했습니다.
물론 완벽한 솜씨는 아니지만 딸아이의 연주라는 자체로
에미의 귀에는 어느 피아니스트 못잖은 소리를 내는 듯 했죠.
둘째딸은 언니보다 더 많이(체르니 몇번이란 걸 따질 때) 쳤지만 피아노 앞엔 잘 앉지 앉습니다.
피아노를 시킬때에도 싫다는 군말 한마디 않고 배운 아이인데
자기나름으로는 싫었었는지도 모르죠.
지금은 막내 아들(초4)까지 피아노를 배웁니다.
누나들을 일찍 시켜도 별볼일 없더란 생각에 늦게(삼학년 가을부터) 시작했는데
요즘은 제법 노래가 되게 치고 있습니다.
사내애라 그저 계명이라도 익히라고 보낸 학원을 좀더 다니게 해야할까 봅니다.
잘 부르지도 못하면서 노래부르기를 좋아했던 전 결혼 전의 꿈이
아들 딸들에게 악기를 하나씩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딸은 피아노, 아들은 바이올린,,,,
아이들의 반주에 우리 부부는 노래를 부르고,,,,
그 장미빛 꿈이 그야말로 꿈이 되어버렸어요.
클래식을 좋아하는 낭만은 고사하고
막걸리와 어울리는 뽕짝만 부를 줄 아는 남편을 만난것도 원인이랄수 있겠지만
아이들 소질은 고사하고 예능 가르치는 것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 지를
전혀 몰랐던 철부지였으니까요.
아니, 설혹 경제적으로 가능했다 하더라도
부모를 닮아 소질이라곤 전혀 없는 아이를 가르치는 것은 더 힘들었을 겁니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기대치를 낮추는 것.
정말 쉽지않은 일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저 녀석이 조금만 노력하면 더 잘할텐데....'
하는 안타까움에 아이를 닥달하곤 하죠.
하지만 이젠 '조금만 더 하면 좋을 노력도 안하는 그것이 바로 그 아이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큰딸아이가 고1이 된 작은 딸에게
'너 고등학교 공부는 장난이 아니다, 너처럼 하다가는 꼴등이야!'라는 말을 합니다.
그건 바로 엄마인 제가 고등학생이 된 큰딸에게 한 소리였거든요.
지금 작은 딸도 제 언니마냥 여유롭습니다.
나중에 언니처럼 후회를 하던 말던 겪지 않은 일이라 당장은 실감이 나지 않겠죠.
저역시 학창시절에 죽어라 공부하지 않았으니까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할 자격도 없는 셈이죠.
간접경험이 필요없는 부분이 바로 배움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