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친정엄마)♡
둘째의 비애
bell-10
2001. 3. 3. 12:07



작은딸이 고교에 진학을 했다.
초등학교 입학 외에는 입학식에 참석하지 않고 있는 터라
이번에도 딸아이 혼자 학교에 갔다.
(사실은 큰딸도 같은 날 대학교 입학식이었는데 역시 불참. 저 엄마 맞나요?)
아침에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나서는 작은딸에게
잘 다녀오라며 '파이팅!' 까지 외쳤지만 현관문을 나서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혜지야, 미안해'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둘째딸의 비애랄까?
유치원은 물론 초. 중. 고를 모두 언니가 다니던 학교에 진학을 한 죄(?)로
평소 입는 옷은 물론 교복까지 물려 입게 되었다.
중학교까지는 언니와 같은 나이면 키와 덩치가 엇비슷했는데
고등학교쯤 되니 언니보다 작은 키 때문에 교복을 그대로 입을 수가 없었다.
동네 수선가게에 가서 아이가 원하는 대로 옷을 줄여서 입혔는데
3년이나 입은 옷이 그렇고 그랬다.
다림질을 해도 그냥 후즐근한 게 여기저기 뻔질거리기까지 한다.
다행히 덩치가 작다보니 줄이게 되어서
낡아 헤진 소매끝 등은 감출 수가 있었다.
며칠전 수선해 찾아온 옷을 입어보며
여고생이 된다고 마냥 좋아하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더욱 마음이 무겁다.
원래부터 자기는 언니 것을 물려 입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아이 나름대로 굳힌 건지
"언니교복 줄여 입은 거 딴 아이들이 다 알겠다..."며 미안해하는 엄마 말에도
"뭐, 어때? 괜찮아요"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정말 괜찮아서든, 엄마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는 뜻에서든,
에미된 심정은 편치 않다.
중학교와는 달리 남녀공학이라 한창 멋을 부릴 땐데...
'모두가 어려운 때이니 만큼 절약하자'라고는 했지만
사는 게 얼마든지 여유가 있는데 정말 절약의 이유로 그랬다면
아이에게 미안함이 덜했을까?
어릴 때부터 뭐든지 언니하고 난 다음으로 미뤄져야했던 아이.
학습지든, 예체능 교습이든, 미루고 미루고 난 다음에야 겨우 시켜서인지
뭐든 하면 열심히 게으름 부리지 않고 해내는 아이.
언니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양보와 배려를 아는 아이.
막둥이 아들이 너댓 살 때 였던가?
물어보지 않아도 될 질문을 했다.
"큰누나가 좋아? 작은누나가 좋아?"
재밌어서 자꾸 해보는 질문에 번번이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작은누나가 더 좋아!"
투정을 부리는 막내를 인내심있게 달래고 어르는 건
항상 작은딸이었다.
아이의 눈은 정확하다지 않는가.
꾸며서 말할 줄 모르는 나이니
맨날 저랑 잘 놀아주는 누나를 좋다고 할 수 밖에.
얼마전 딸의 책상에서 친구의 편지를 발견했다.
호기심에 살짝 읽어보니 중학교 졸업을 앞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친구가 쓴 편지글 중에는
'너는 참 좋은 친구야, 내게는 없는 배려란 걸 넌 가졌어.
널 좀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걸....'이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아, 우리 딸이 친구들에게도 따뜻한 아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구나' 싶어 기쁘기까지 했다.
이제 여고생이 된 둘째딸.
한 학교에서 함께 간 친구들이 없다고, 한반 된 아이들이 모두 언니 같아 보인다고 한다.
아마 반에서 제일 작은 키는 아닌지......
이쁘지도 않고 공부를 썩 잘하지도 못하겠지만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하여 친구들과 좋은 친구로 만나길 믿는다.
혜지야! 넌 뭐든지 다 잘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