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子의 이름으로♣
명 함
bell-10
2001. 2. 17. 18:39
일년 전쯤인가?
여고후배와 동갑인 그녀 친구를 만났다.
지역감정 운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은 것처럼
그 후배는 경상도, 친구는 전라도 태생이다.
다같이 결혼 후 이곳 안양에 자리잡고
아이들 키우면서 알고 지내다가
이제는 친자매 이상으로 가깝게 가족들과도 다 알고 지내는 사이란다.
하루라도 안보면 안될 바늘과 실의 사이로
주위에도 널리 알려졌을 정도란다.
참,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이게 아닌데.....
그 후배의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내게 내민 명함 한 장.
명함을 내밀기에 처음엔 흔히 우리 아줌마들이 그러하듯
무슨 보험회사나 화장품 회사의 판매원인가 싶었는데
정말 의외로 글자라고는 딱 이름 석자와 연락전화번호,
그리고 이쁘게 웃음 짓는 그녀의 얼굴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냥 평범한 가정주부인 그녀가 명함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때까지 명함이라면 그저 복잡하게
글자와 숫자를 나열해 놓은 거라 생각하던 내겐 참 의외였다.
나도 저런 명함 하나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미모를 가졌더라면....
10년 후배니 이제 30대 중반, 그 빛나는 젊음이 부러웠다.
내게도 명함이 있기는 하다.
그것도 두 가지씩.
물론 못생긴 얼굴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흰 바탕에 검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돈버는 일도 아니지만 나름대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명함인데
처음엔 상대에게 명함 한 장 건네는 것도 얼마나 쭈뼛거려 지든지....
결혼 후 '누구엄마'로 불리면서 이십 년 가까이 살아오다
김 아무개라는 낯선 내 이름 석자를 발음하면서
명함을 건네는 게 정말 쑥스러웠다.
하지만 두어 해가 지난 요즘은 정말 자연스럽게 잘도 내민다.
컴퓨터를 가까이 하고 난 뒤로는 메일주소까지 함께 새겨두어
다른 이들에게 일일이 어려운 발음으로
메일 주소를 확실하게 말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은 누구나 쉽게 명함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나름의 캐릭터도 새겨 넣을 수 있고
튀는 색깔의 종이를 사용할 수도 있고
큰돈들이지 않고 만들 수 있는 명함이라
학생들에게도 유행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누굴 만났을 때 굳이 이름 석자를 힘주어 말하지 않아도
명함 한 장이면 이름이며 하는 일,
연락처 정도는 알릴 수 있으니 정말 편리하다.
결혼한 후 아이 낳고 키우며 집안 일에 묻혀버린
내 이름 석자를 다시 부활시킨 명함.
작지만 소중한 나만의 것이 아닐까?
난 다른 사람들의 명함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명함은 비록 크기는 작지만 상대방을 나타내는 모두가 될 수도 있기에.
내 명함을 건네 받은 다른 이들도
나처럼 소중하게 간직해 주고 오래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독자님들, 이러다 제가 '명함 만들기 운동본부'라도 차리게 되면 어쩌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