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친정엄마)♡

늦게 배운 도둑질

bell-10 2003. 5. 27. 14:27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
정말 내게 딱 들어맞는 소리다.
지난 목요일, 그날도 퇴근하는 대로 저녁을 먹고
아들과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러갈 생각이었다.

아침에 눈비비고 일어나는 아들에게
"오늘 저녁에 스케이트장 갈 거야. 학교에서 돌아오는 대로 할 일 다해놓고 기다려."
"네~~"
거기까지만 하면 좋았을 것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되물었다.

"너, 구몬 다했니?"
"아니, 조금 남았어요."
"오늘 선생님 오시는 날인데 아직 덜 했다구?"
또 거기까지만 하고 "학교 갔다오는 대로 다해라."했으면 좋았을 것을.

슬며시 못미더운 생각이 들어 "구몬 갖고 와 봐!"까지 했다.
쭈빗거리던 녀석이 구몬을 찾아낸 곳은 거실 소탁자 안 바둑판 밑이었다.
일주일동안 해야할 세과목 중 겨우 한자만 개발세발 그려놓고
중요한 수학, 영어는 또 한 장도 안 푼 것이다.

저도 너무 안한 게 찔려서 깊이 감춰두고 있었는데
귀신(?)같은 엄마에게 그만 들켜버리고 만 것이다.
'대체 이걸 어째?"
좍좍 찢어버리는 것은 지난번에 이미 써먹은 수법.

안방에 쫓아 들어가서 효자손을 꺼내들고 나왔다.
"엄마가 구몬 하라고 시켰어?"
",,,,"
"이렇게 밀리려면 하지 말라고 했는데 니가 한다고 우겼잖아!"
",,,,"
새벽같이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조용조용 힘주어 말하려니 더 열이 났다.

"안한 게 전부 몇 장이야!!"
주섬주섬 종이를 세는데 얼추 40장은 족해 보였다.
"40장이요,,,"
"그래? 한 장에 한 대씩 40대네."
얼토당토않게 많은 매 수를 듣고는 그만 사색이 되는 아들.

겨우 눈비비고 일어난 녀석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겠지만
녀석의 손을 붙잡고는 한번에 타다닥 열대를 때렸다.
인정을 조금은 두고 때렸지만 녀석의 손바닥이 벌개졌다.
다시 때리려고 손을 잡으려니 "엄마, 잠깐만요,,,"하고 손을 감춘다.

"너! 그러면 손이 아니라 머리통이든 팔이든 아무 데나 마구 때릴 거다!!"
"너무 아프단 말이에요,,,"하면서도 한번 한다면 하는 엄마를 아는지라
어쩔 수 없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다시 두차례 더 열대씩을 때리고 남은 열대는 큰 선심이나 쓰는 듯 감해줬다.
그리곤 그 아침 내내 더 이상 아무 말도 않았다.
이제 당분간은 안 밀리고 잘 하겠지.

학교에서 돌아온 녀석은 부지런히 못다푼 문제를 다 풀었는지
전화로 다 풀었다고 보고하고선 끝내 한마디 덧붙였다.
"엄마, 스케이트 타러 가실 거예요?"
나 같았음 미안해서라도 말을 못할텐데 뻔돌이 같은 넘.

결국 그날 늦게 배운 도둑질을 하러 가고야 말았다.
기어코 스케이트를 타고야 말겠다는 모자지간 굳센 의지를
아들녀석 공부에 쏟아 부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