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친정엄마)♡

엄마 자격증

bell-10 2000. 12. 10. 15:43


어제가 초등3년인 막둥이 아들의 생일이었습니다.
그저께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야기가
한반 아이랑 생일이 같은 날인데 그 애는 친구들에게 초대장을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찔리는 마음이 들더군요.

사실 아이 셋 중 큰딸은 첫애여서인지
유치원부터 초등 졸업반 때까지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생일잔치를 해주었는데
둘째딸만 해도 게으름이 나서 서너번 시늉만 내다가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막둥이는 그나마 귀찮아(?) 아예 생략해버렸답니다.
아이에게는 친구들 초대에 드는 비용으로 좋은 선물 사준다는 감언이설로 꼬드겼지요.
그런데 정작 선물은 한번인가로 그치게 되었고 이제는 생일날 미역국 끓이는 걸로
엄마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팥쥐엄마 같은 엄마가 돼버렸답니다.

그런데 생일이 같은 친구가 생일잔치를 하는 눈치이니
아이마음에 저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밖에요.
하지만 이제 와서 안 하던 생일잔치를 새로 해주기가 귀찮은 마음에 아이에게 물어봤습니다.
'너도 생일잔치하고 싶니?'
저도 생일잔치를 해달라고 하기에는 엄마 마음에 들도록 한일이 없어 미안했던지
'아니....'하는 아이의 얼굴이 썩 밝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저는 그 대답을 그냥 밀고 나갔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상에 미역국, 생선토막, 잡채 등
생일을 의미하는 음식 몇 가지만 추가하고
그날 저녁 먹은 뒤 생일케이크 앞에 두고 식구들이 한자리에서 축하노래 부르는 것으로 끝내고 말았습니다.
제 누나들이 작은 선물을 주기는 하였지만 이번에는 아이에게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아들이 큰애였다면 집안 곳곳에 풍선도 불어 매달고 고깔모자도 손수 만들고
아이들 좋아하는 음식이 뭘까 고민하며 생일상차리기를 즐겼을 텐데....
생일상에 오른 음식들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친구들이 놀러와 주어서가 아니라
정작 생일선물받는 즐거움 때문에 생일잔치를 하고싶어 하는 게 아이들인줄 알면서
아이의 작은 소망을 짓밟은 엄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 하나 하나마다 다 정성을 쏟아 키우던데
전 아마도 엄마자격증이 있다면 자격미달일게 뻔한 엄마입니다.
물론 생일잔치 하나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면이 다 그렇다는 말이지요.

큰애 때는 아이가 4학년이 되어 청소년 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가스렌지 같은 화기는 쓰지도 못하게 감시(?)하였는데
지금 우리 아들은 1학년 때부터 계란후라이니, 라면이니 해먹어도 걱정이 안됩니다.
집 열쇠를 맡긴 것도 큰애는 초등학교 들어가고도 한참 후인데
아들은 유치원도 가기 전 열쇠를 맡기고 다녔습니다.
매끼 식사도 큰애는 엄마가 없으면 해결이 안 되는 줄 알다가
아들은 밥통의 뜨거운 밥을 먹거나 찬밥을 전자렌지에 데워먹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저는 지금 아들을 방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이 학기말 시험기간이라지만 점수가 잘나오든 못나오든 애도 타지 않습니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나름대로 정의를 내린 게 있어서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은 아이 몫이라는 것.
그런데 아무리 제자신에게 유리하게 핑계를 대려해도
직무유기 중인 엄마가 바로 저란 생각이 자꾸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휴... 이제부터라도 좀더 신경을 써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