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친정엄마)♡

교복치마가 초미니 스커트로...

bell-10 2000. 10. 17. 19:31

2년전 큰딸이 고등학교를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중학교 때까지 이웃집 언니 교복을 물려 입었었는데
고등학교는 물려입을데가 마땅찮아 새교복을 장만했다.
입학 때는 동복을 준비했었고 그해 여름이 돌아오자 하복을 마련하게 되었다.

하복을 입고 다니던 8월초 무더운 어느 날.
방학이었지만 보충수업이 있어 아침에 등교하던 아이가
현관에서 인사를 하더니 갑자기 조그만 쪽지를 내밀며
"엄마, 이거 읽어보세요"하고는 내빼듯이 가버렸다.
생일날이 아니면 생전 모녀끼리 쪽지교환 같은 건 없이 살아온 터라
의아해하며 펼쳤더니 손바닥만한 메모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엄마, 너무 죄송해요. 하복치마를 줄인다고 줄였는데 너무 짧아져 입을 수가 없어요.
엄마께 혼날까봐 엄마 모르게 돈 모아서 사려고 했는데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안되겠어요. 엄마가 미리 사주시면 꼭 갚을게요.
다시는 안 그러겠어요. 엄마 죄송해요.'

너무나 놀라 옷장문을 열어보니 입고 나간 줄 알았던 하복치마가
이쁘게 접혀져 있는 게 아닌가!
꺼내서 내 허리에 갖다 대어보니 세상에 이건 얼마나 잘라버렸는지 내게도 미니스커트였다.
딸아이가 나보다 키도 훨씬 더 크고 요즘 아이들이 다리도 더 긴 체형이니
제게는 얼마나 짧은 지 알만한 일이었다.

머리꼭지가 휙 돌아버릴 지경으로 열이 났다.
그러고 보니 그날 입고간 것은 그 두꺼운 동복치마였다.
딸네 학교는 동. 하복 무늬가 같아 만져보지 않으면 구별할 수가 없는 것이 다행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8월 초순의 삼복더위 속에
저도 두꺼운 동복치마를 입고 도저히 다닐 순 없었던지 고백(?)을 하고만 것이었다.

종일 '들어오기만 해봐라, 다시 사주나 봐라, 이 땡볕에 한번 혼나봐야지,
하라는 공부는 않고 되지도 않는 멋만 부리다가 꼴 좋다'며 벼르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줄였기에 줄여주는 사람도 너무 심하다는 남의 탓도 했다.

보충수업을 받던 때라 일찍 돌아온 딸아이.
들어오는 애의 치마를 보니 그 두꺼운 동복치마다.
혼을 내주려고 했는데 피식 웃음부터 나왔다.
그래도 아이를 붙잡고 "니가 정신이 있는 애냐, 없는 애냐? 엄마는 못 사준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 줄였느냐?"고 했더니
"분명히 재보고 고쳤는데..."하면서 아파트상가 옷 고치는 집에
친한 친구랑 둘이서 갔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사흘 전에 고쳐서 이 무더운 날 이틀동안 동복을 입고 다닌 터였다.

당장 치마를 들고 옷수선집을 찾아갔다.
"아줌마, 어쩌면 이럴 수가 있어요. 애들이 옷 고쳐달라고 해도 너무 짧다싶으면
아줌마도 애 키우시는 분이 주의를 주던가 하시지..."
다짜고짜로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 아줌마 말씀이
"그러잖아도 너무 짧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친구랑 둘이서 괜찮다며 고쳐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민망스러운 마음에 잘라진 천이 아직 그냥 있으면 다시 이어 붙여달라는 주문을 했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아줌마가 쓰레기통을 뒤져 잘라진 천을 찾아냈고
그 자리에서 무늬를 맞춰가며 다시 이어 붙여주었다.
아무리 잘 이어 붙였어도 체크무늬가 원래대로 되지 않고 끝에 가서는 삐딱하게 붙여져
내가봐도 이걸 입고 다니겠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기회에 아이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보려고 했다.

집에 와서 딸애에게 '그 아줌마 얘기가 니들이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더라, 어쨌다더라'며 한참 잔소리를 한 후 수선된 치마를 입고 다니라며 내밀었다.
저도 지은 죄가 있으니 아무 소리도 못하는 딸.
다음날부터 그 이어 붙인 교복을 싫어도 입고 다니는 딸.
그걸 보는 에미마음이 아파서 새 치마를 사러 갔지만 교복판매점에는 벌써 동복이 준비되고 있는 시즌이라 하복을 구할 수가 없었다.

치마가 그렇게까지 짧아진 이유를 나름대로 추리해보니
몸을 기울이면 치마길이가 더 길어진다는 것도 모르고
지 무릎 위에 맞춰서 표시를 했던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적당한 길이를 재 줘야 하는데 우리 딸은 제 스스로 했으니...

딸애는 그해 여름 내내 그 이상하게 이어진 하복치마를 입고 다녔다.
성질대로 하자면 졸업 때까지 기념으로 그 치마를 입혀야 하는데
그만하면 충분히 벌 세웠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해 여름 다시 새 교복치마를 사주었다.
엄마 성질을 알아 기대도 안 했다며 좋아하던 딸아이.
그런데 그 새로 산 치마의 통을 어느 날엔가 제 스스로 또 줄여
엉덩이에 딱 붙게 입고 다니는 게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말려야 할 지 대책이 안서지만
제가 할 공부는 스스로 잘하고 있으니
그래도 밉지만은 않은 게 부모마음인가보다.
이러다 우리 딸을 이 에미가 망치는 건 아닌가? 은근히 걱정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