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친정엄마)♡
그 딸의 그 엄마(귀뚫기 시합?)
bell-10
2000. 10. 11. 09:48
지금 고3인 큰딸이 중3때의 일입니다.
2학년 때까지는 그런 대로 성적이 괜찮던 아이가
3학년이 되면서 성적이 조금씩 떨어지더군요.
친구들과 몰려다니기도 하고요.
엄마인 제가 볼 때는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아
(저도 범생이 에미라고 자부했었어요)
가끔씩 잔소리만 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딸아이의 비밀일기장에서 발견한
정말 까무러칠 만한 사건 하나.
그 동안 아이의 일기장이 있는 걸 알았기에
아주 가끔씩 몰래 꺼내보곤 했었어요.
근데 한달 만에 꺼내본 아이의 일기장에
한달 전에 세상에! 귀를 뚫었다고 쓰여있지 뭐겠어요?
요즘 애들도 그렇지만 귀를 덮어 내리는 단발을 하고 다니니
그 머리를 쓸어올려보지 않은 이상 귀가 보이지 않잖아요.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함께 목욕도 안가는 아이다 보니
귀를 뚫었는지 어쨌는지 알 길이 없었답니다.
(한심한 에미의 변명이긴 하지만)
그 시간부터 에미의 고민이 시작된 거죠.
이걸 그냥 성질대로 하자면 집에 들어오는 동시에
소리를 지르며 혼구녕을 내야 하겠지만
어렵사리 냉정해지기로 마음먹었답니다.
제가 이 성질에 아이에게 바로 물어보지 못하고
혼자 사흘을 고민하다보니 나중에는 꿈까지 꾸게 되더라고요.
꿈꾼 다음날 학교 갔다 들어오는 아이에게 불쑥
"야, 엄마가 꿈꿨는데 너 귀 뚫었더라!"했죠.
아이의 얼굴이 좀 빨개지는 듯 하더니
"엄마 알면서...." 하는거에요.
"정말 뚫었냐?, 어디 좀 보자, 와, 정말이네, 아프지 않았냐? 주사도 못 맞는 애가...."
어찌 그리 맘에도 없는 말이 줄줄 나오는지.
정말 자식일 만은 성질나는대로 못하겠더군요.
이미 일은 저질러진 거고 너무 심하게 하면
오히려 역효과날까봐 은근히 걱정도 되고해서
정말 이해심 많은 에미로 돌변한 거죠.
그런데 아이의 머리를 들추고 자세히 살펴보니
세상에 이건 한쪽 귀만 뚫었지 뭐예요.
꼴에 또 더 멋부린다고 한쪽만 뚫었나 싶어 물어보니
두 군데 뚫는데 4천원이었는데 돈이 모자라
친구랑 둘이 반반씩 내고 한쪽씩만 뚫었대요.
얼마나 하고 싶었으면 한쪽만이라도 뚫겠다는 생각을 한 건지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정말 못 말리는 딸이지 뭡니까?
그러고 난 뒤 그 동안 아파서 고생은 안 했는지
어떻게 처리했는지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게 되었고
아이도 에미가 심하게 야단을 안친다 싶어서인지 대답을 술술 했답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그래도 덧나지 않게 잘 지나서 다행이구나 하는 안도감.
자식 키우는 에미의 심정이 바로 이런 건가 봅니다.
딸들 앞에서 멋도 안 부리고 정말 귀 뚫으면 천지가 개벽할 태세로 살아왔는데
아이들은 엄마의 그런 점을 본받기보다 유행에 더 민감하게 자라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더욱 문제인 것은 그 2년 후 중2가 된 둘째딸도 귀를 뚫었답니다.
언니보다 한술 더 떠서 더 빨리 두쪽 다요.
그래도 뚫은 즉시 에미에게 귀뚫었다는 신고는 하더군요.
또 그 2개월 후 멋이라곤 정말 부릴 줄 모르던 이 에미까지 귀를 뚫었답니다.
머리아픈게 괜찮아진다는 이야기에 현혹이 돼서요.
이제 우리 세 모녀는 귀뚫는데 있어 '누가 누가 잘하나' 내기 한 셈이 되었습니다.
그 엄마의 그 딸이 아니라 그 딸의 그 엄마인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