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子의 이름으로♣
아줌마, 드디어 직접 운전하다!
bell-10
2000. 9. 25. 17:42

운 좋게도 운전면허시험에 단번에 합격한 후
그냥 있으면 장롱면허가 된다는 주위의 이야기도 있고해서
곧바로 연수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때 집에는 오토매틱이 아닌 기어 자동차가 한 대 있었고
열흘에 십수만원 한다는 연수비도 아까워 남편에게 연수받기로 결정했다.
남편은 거의 20년전 면허소지자로 운전에는 베테랑이니 믿고 연수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당시 신문지상에는 연수시키다 싸움이 시작되어
이혼까지 한 부부의 사례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
남의 일이라 정말 웃긴다라는 생각을 하고 지나쳤는데
정말 그러고도 남을 일이었다.
마침 시어머님께서 집에 와 계신 어느 일요일.
드디어 남편과 함께 남편이 보아둔
집근처 백운호수 주변의 평평한 공터로 차를 몰고 나갔다.
물론 거기까지는 남편이 모는 차를 타고 가며
나도 이제 오너드라이버가 되는구나 하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도착한 장소에는 다른 이들도 연수를 받았는지 타이어 패인 자국도 눈에 띄었고
터가 제법 넓어 연습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남편과 나는 자리를 바꿔 앉았다.
드디어 운전석에 앉은 나.
뭐든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운 대로 안전벨트를 메고 브레이크를 꽉 밟고 시동을 걸었다.
부릉하며 걸리는 시동소리.
못미더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던 남편이 기어를 바꿔보라고 했다.
그런데 기어를 바꾸다니 이게 무슨 소리?
운전배우신 분은 다 아시다시피
운전면허 딸 때는 전진과 후진기어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빨리 갈 일도 없고 천천히 1단으로 모든 시험을 보기 때문에
2단,3단 기어는 어떻게 하는 지조차 모르는 게
그 당시 우리 나라 운전면허시험의 실상이었다.
내옆에 앉은 남편 역시 면허딸 당시에는 같은 처지였을텐데도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한다는 속담에 딱 들어맞게
자신은 처음부터 다 알았다는 듯이 큰소리를 쳐대는 것이었다.
"바보같이 기어 넣은 것도 모르면서 무슨 운전을 한다고 그러느냐,
그것도 안 배웠냐, 당장 그만 두라" 등등.
성질 급한 남편이 왕초보의 심정을 헤아려 주지는 않고 윽박질러대는 통에
나도 화가 나서 소리를 같이 질러버렸다.
"그래, 나 바보다. 당신에게 배우다간 우리도 이혼하게 생겼다. 돈 들여 연수받을 거다"라며.
시작한 지 정말 오 분도 못되어 우리 부부는 대판 싸우고
서로 입을 굳게 다문 채 집으로 돌아왔다.
영문도 모르시는 시어머니께서는 "왜 이렇게 빨리 왔느냐"고 하셨고
나는 "어머니, 운전 연수시키다 이혼한 부부 이야기 정말 그러고도 남겠어요.
저 돈 들여서 연수받을 거예요"라며 열을 냈다.
'지가 그러면 축나는 건 돈밖에 없지, 내가 그렇다고 그만둘 줄 아나?'하는
내 마음을 남편은 알 리도 없었겠지.
아무튼 다음날로 당장 연수선생님을 구했고 열흘간 연수를 받았다.
한 사흘까지는 신호등 보랴, 다른 차 신경 쓰랴,
강사 잔소리 들으랴, 정말 헤맸지만 차츰 나아졌다.
열흘 연수가 다 끝나고 다음날 혼자서 차를 몰고 거리로 나섰다.
연수 끝나고 그냥 있으면 나중에 다시 연수를 받아야한다는 소리도 있었고
처음부터 누가 옆에 앉아 있을 버릇들이면
혼자서는 아무 데도 못 간다는 말도 있어 용기를 내어 보았다.
그날은 초겨울 날씨였는데
두꺼운 옷을 입으면 운전하기가 불편할 것 같아 옷도 여러겹 입지 않기도 했지만
막상 아파트 입구로 나와 도로로 진입하려는 그 순간부터 왜 그리 떨리는지....
'침착하게 배운 대로만 하면 된다'고 자신을 다독였지만
너무나 떨려 이빨이 마주치는 것은 고사하고
핸들을 잡은 팔, 다리까지 덜덜 떨리니
누가 그런 나를 봤다면 정말 가관이었을 것이다.
신호등 앞에 서서 브레이크를 꽉 밟고 핸들을 꽉 잡고 있으면 그나마 덜 떨렸지만
주행 중에는 차가 지그재그로 가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덜덜 떨었다.
아무튼 주차를 못해 30분 정도 연수 다니던 도로를 한바퀴 돌고 오는데
죽다 살아난 것만 같았다.
다음날 일어나니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팠지만
그렇다고 쉬면 언제나 처음일 것 같은 마음에 다시 나가기를 매일 반복했다.
다음날 그 다음날 횟수를 거듭하니 조금씩 떨리는 것도 나아졌고
시야도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겨울날 눈이 많이 내린 날을 제외하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3개월을 연습하고 나니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겼다.
서울시내 지도 한 장만 들고 일부러 서울 사는 친구 집에도 가보는 등
점점 가는 거리도 멀어지고 시간도 늘어났다.
이렇게 해서 운전을 시작한지 벌써 7년째다.
이젠 지도 한 장만 가지면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 다 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운전은 자만감은 절대 금물.
언제나 안전운전 양보운전이 필수라는 건 여러분께서도 다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