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 느 리........ ♡

한밤에 울린 전화

bell-10 2002. 8. 28. 00:29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남의 집에 전화하기는 너무 늦은 시간인데 도대체 누굴까?
올빼미처럼 지내는 요즘 아이들에겐 자정도 초저녁이라
그 시간까지 컴퓨터 앞에 있던 작은딸이 전화를 받는 눈치였다.

"네, 안녕하세요, 네, 아빠요?"
누군가 남편을 찾는 모양이었다.
"아빠, 할아버지 전화 받으세요."
'아버님께서? 웬일이시람...'
초저녁잠이 많은 남편이 자다말고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더니
"네, 네, 네, 그럼 내려가야지요."하면서 몇 마디 않고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이에요?"
"응, 엄마가 좀 안 좋다고 하시네..."

평소 건강이 좋지 않은 시어머님께서 얼마나 위중하시기에
이 한밤중에 멀리 있는 우리에게 전화를 다하셨을까 싶어

부랴부랴 길을 나섰다.
한밤의 고속도로를 쌩쌩 달려 시댁에 도착하니 새벽 3시가 가까웠다.

남편이 집을 나서면서 시댁 가까이 사는 시누이에게 연락을 취한 덕에
우리보다 한발 앞서 시누이 내외도 도착해 있었다.
내내 걱정하면서 달려온 남편과 나는 시누이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허탈함을 느꼈다.

사건인즉,
다리가 아파 제대로 걷지 못하시던 어머님께서 사돈(동서 친정엄마)

별세 소식에 충격을 받으셨던지 며칠 식사를 제대로 못하셨단다.
그 날 저녁 막내시누이가 와서는 드시고 싶다는 냉면을 사드렸는데
두어 시간이 지나니 소화가 제대로 안되었는지 변의(便意)를 느끼셨단다.


방에 바로 딸린 화장실을 가시는데도 시간이 걸리시는데

그날따라 급히 가셨던지 몇 번 넘어지셨고 그 통에

방과 화장실 바닥에 볼일을 보시고 말았던 것이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이런 일이 있었다고 동서를 통해 들었었다.
그때마다 동서가 뒤치다꺼리를 했는데 마침 동서가 친정엄마 상을 당해

없던 터라 당황하신 아버님께서는 자식들에게 전화를 하셨던 것이다.

미리 도착한 시누이가 방이며 화장실 청소를 깨끗이 해놓은 덕에

나는 이번에도 편한 백성이 되었다.
맏이인 나는 늘 이렇게 얌체같이 위기를 피해갔으니

동서보기 면목이 없을 정도였다.

큰일이 아니라 마음이 홀가분해진 시누이 내외와 남편은

그 날 새벽4시가 넘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안방에 누워서 나와 이야기를 하시던 어머님이 거실의 두런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죽고 나면 관속에 넣어놓고 모두 저러고 있겠지,,,"

세상 삼대 거짓말 중 하나라는 노인들의 '죽고싶다'는 소리.
그건 바로 살고싶다는 외침이 아닐까.
그 날 어머님의 말씀이 지금껏 내 귓전에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