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l-10 2002. 7. 30. 10:32

작은딸에게서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엄마, 파마해도 돼요?'
아직 고등학생인 주제에 파마라니,,,
즉시 문자를 날렸다.
'안돼, 대머리 되고싶어?'
다시 날아온 문자.
'그게 엄마가 딸에게 할 소리예요? ㅠㅠ'

예전과 달리 두발 자유화로 요즘 여고생들 머리는 천태만상이다.
짧은 커트에서부터 치렁치렁 긴 머리까지.
매일 아침 긴 머리를 감느라 어떨 때는 밥도 못 먹고 가는 딸에게 잔소리를 해댔는데
한술 더 떠 파마라니, 절대 찬성할 수 없는 일.
더구나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고있는 아이라 독한 파마약이 머리에 나쁜 영향을 줄까봐
더더욱 찬성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정말 간절히 파마를 하고 싶어했다.
방학중에만 했다가 개학하면 풀겠다면서.

"그래? 그럼 엄마가 해줄 테니 엄마 시간 날 때까지 기다려!"
파마의 ㅍ 자도 모르면서 큰소리를 쳤다.
"엄마, 정말 파마할 줄 아세요?"
"야, 파마가 별거냐? 파마약 사서 감으면 되겠지"
엄마의 큰소리에 약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서도
파마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어정쩡하게 동의해버린 작은 딸.

우선 인터넷을 통해 미용재료상 전화번호와 대강의 위치를 확인했다.
전화를 걸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후 재료상을 찾아갔다.
화장품 할인코너처럼 미용재료를 진열해두고 판매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찾아가 보니 전부 박스에 담긴 완전 도매상이었다.

미용실에서 미용사가 내 머리 파마할 때 쓰던 기구를 기억해내곤
열심히 설명했더니 도매상 아저씨가 "파마 해보셨어요?"하고 말했다.
"처음인데요?"하는 내 말을 듣고 한심하다는 듯이 웃으시던 그 아저씨.
인심 좋게도 낱개로 판매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며 요령까지 가르쳐주셨다.
제일 좋은 파마약, 세팅에 필요한 롤과 부직포 종이, 고무줄, 파마한 후 뿌리는 에센스까지
완벽하게 구입을 마쳤다.

드디어 집에 와서 행동개시에 들어가려니
아차, 미용사가 끼는 장갑을 빠뜨렸네,
일회용 위생장갑이라도 껴야지,,,
어유, 남는 머리를 올려 집어두는 집게핀도 없네,
하는 수 없지,,,,

막둥이를 불러 아르바이트를 시켰다.
'누나 머리 잡아주면 천원 줄 게'
천원이란 소리에 얼른 자청하고 나선 막둥이.
조금 지나니 팔이 아파 오는지 언제 끝나느냐고 연신 물어왔다.
"이눔아, 돈 천원 벌기가 쉬운 줄 알았어?"

온 식구가 총동원되어서 난생 처음 해본 파마의 결과는?
세상에,,,,
작은딸 머리 어디서도 웨이브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한마디로 실패였다.

그렇다고 예서 그만둘 내가 아니었다.
그 재료상을 다시 찾아가 장갑이며 머리핀까지 새로 구입을 해서는
일주일만에 재도전을 했다.
이번에는 시간을 넉넉히 둬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
지난번보다 조금 웨이브가 지기는 했지만 역시나였다.

하긴, 나 같은 사람까지 파마를 할 줄 알면 미용실 다 문 닫아야겠지,,,,
그래도 우리 작은딸, 그 머리를 자랑스럽게 휘날리며 다닌다.
어차피 방학 끝나면 펴야 하는데 괜찮다면서.

그래, 기왕지사 파마도구까지 장만한 터.
딸들아, 기다려라.
기필코 파마를 배워서 겨울방학때 다시 도전해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