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 .............. ♡
엄마! 정말 사랑해요.(엄마 생신날에)
bell-10
2000. 8. 30. 09:53
오늘은 친정엄마의 67세 생신 날이다.
친정에서는 조부모 기일부터 아버지 엄마 생신, 우리들 생일까지 모두 양력으로 지낸다.
그래서 엄마생신은 항상 아이들 개학 후라 평일이면 챙겨드리지 못할 때가 많았다.
멀리 있다, 애들 어리다는 핑계로.
올해는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나 혼자 생신을 챙겨드리러 친정에 갔다.
하나뿐인 남동생은 울진에 살고있어 못 올게 뻔하다.
'마음만 있으면 올케라도 잠깐 다녀가면 될텐데...'하고 동생내외가 못마땅했는데 엄마말씀을 들어보니 울진에서 대구까지는 버스로는 당일 왕복이 되지 않는 거리란다.
더욱이 동생이 수년째 고3담임을 맡고 있으니 평일이면 시간내기가 더욱 힘들어 지난해와 올해는 아버지 기일까지 엄마가 울진에 가셔서 지냈다.
친정인 대구보다 여기서 훨씬 더 멀어서 난 당연히 못 갔고(이것도 나의 핑계밖에 되지 않겠지).
친정이 천주교 집안이라 제사래야 여타 유교적인 제사와는 거리가 있는
그저 기일일 뿐이지만 조부모 기일은 모든 친척이 다 모여야 하니 어쩔 수 없고
아버지 기일에 제주인 아들이 빠지는 게 엄마는 못내 섭섭하셨던 거다.
어쨌든 어제 오전에 집에서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서 무조건 수원역으로 향했다.
친정에 가서 시장보고 준비해도 되지만 엄마가 쓰시는 부엌이 내겐 좀 낯설기도 하고 엄마는 나의 그런 수고를 그냥 두고 볼 분이 아니다.
간다는 이야기를 미리 하면 엄마는 쌍수를 들고 못 오게 말리신다. 아들이건 딸이건.
그래서 말도 않고 내려간 것이다.
며칠째 내리던 비도 다행히 멎었고 표도 미리 예매하지 않았지만 평일이라 기차도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었다.
간단한 손가방 하나와 검정비닐 봉지 하나.
손가방 안에는 내 소지품이 들어 있고 검정비닐봉지 속에는 미역국(미처 식지 않아 수건으로 둘둘 말아 쌈), 김치, 마른반찬 몇 가지가 들어있다.
내 손으로 들고가야해서 많이 넣지는 못했지만 텅텅 소리가 나는 엄마의 냉장고를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하기까지 했다.
혼자서 밥해먹고 반찬준비하는게 더 성가시다며 아침만 커피를 곁들인 토스트를 드시고 나머지 두끼는 매식을 하시는 정말 신세대이신 우리엄마.
그러니 냉장고 속엔 식빵, 계란 등이 전부일 수밖에.
어쩌다 올케가 왔다가며 드시라고 사넣어두는 고기며 다른 찬거리들은 며느리 몰래 딸인 내게 다 들려보내시는 엄마.
걱정하는 내게 도리어 "걱정 마라, 내 입맛대로 다 사먹는데 뭐가 걱정이고. 나 혼자 먹으려고 준비하면 돈도 훨씬 더 든다. 나는 이게 편하다"고 하시지만
원래 잘 드시지 않는 분이 챙겨주는 사람 없이 혼자 해 드시려니 '얼마나 서글퍼 저러실까' 싶어 가슴이 아프다.
아직 사지 멀쩡한데 왜 아들 내외에게 짐되느냐며 한사코 혼자 계신다니 자식도 어쩔 수가 없다.
내가 며느리라 해도 속으로는 오시지 않는 시어머니가 좋을 테니 이게 겉과 속이 다른 딸과 며느리의 차이인가?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초록의 풍경들이 가끔씩 내 상념을 방해하기도 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혼자 엄마 생각을 많이 한 시간이었다.
남편과 함께 차로 다니다보니 잘 몰랐는데 기차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리면서 참 대구가 많이도 변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 인생의 2/3를 여기서 지낸 곳인데 이리도 낯설다니 변화의 속도가 세월의 무게보다 갑절은 더한 느낌이 들었다.
어두컴컴한 시간에 대문을 열고 들어서며 "엄마"라고 크게 불렀다.
꿈인지 생신지 "이게 누고?"하시면서 깜짝 놀라시는 엄마.
엄마를 부르는 내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이슬이 내리는 걸 참느라 혼났다.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시면서도 사위, 외손들 걱정에 "왜 왔느냐"고 오히려 역정까지 내시는 엄마.
'내가 당신 속을 모를 줄 알고?'
내 생각대로 엄만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시켜놓으신 중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짜장면을 시켜 먹었고 우리 두 모녀는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정말 얼마 만에 아니 결혼 후 거의 처음으로 엄마와 단둘이 밤을 지냈다.
따로 깔아주신다는 이부자리를 마다하고 한 이부자리에서 엄마 곁에 꼭 붙어 누웠다.
어릴 때 우리 삼남매는(큰 남동생은 이십년전 사고사) 서로 엄마 곁에 누우려고 밤마다 자리쟁탈전을 벌였다.
항상 맏이인 내가 두동생에게 엄마를 양보해야 했으니 그때 엄마 나이보다 더 늙은(?) 내가 지금에서야 아이처럼 엄마 곁에 달라붙어 누웠다.
엄마, 엄마, 울엄마....
밤새 이야기를 하다 엄마도 나도 어느새 잠이 들었다.
아침에 휴대폰 알람소리에 내가 먼저 깨려고 했는데 엄마가 먼저 깨셔서 벌써 아침밥을 하고 계셨다.
얼른 들어가시라고 하고선 엄마 아침상을 차렸다
준비해온 미역국에 몇 가지 반찬들.
너무 조촐한 상이었지만 엄마는 고맙다는 말씀을 연신 하시며 드신다.
우리 남매 식구에 엄마까지 겨우 열 명밖에 안 되는 식구가 한 자리에 못 모이다니, 엄마가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신다고....
목이 메어 밥이 넘어가질 않지만 내색도 하지 못하고 아침이 너무 일러 밥맛없다는 말로 몇 숟가락 못 떴다.
아마 엄마도 이런 나를 눈치채시고 겨우겨우 드셨으리라....
아침만 해 드리고 치워놓고 나는 다시 기차를 타기 위해 엄마와 작별을 나눴다.
'올 때는 반가운데 가는 뒷모습이 싫어 안 왔으면 하는데 또 안보면 보고 싶고...'
아버지 살아계실 때 부터 두 분이 늘 하시던 말씀.
이게 부모의 마음이다.
엄마도 나도 애써 명랑한 척 작별을 했지만 돌아 나오는 나도 들어가시는 엄마도 속으로 울었다.
이게 무슨 자식이람. 엄마 속을 끝까지 아프게 하는데...
다시 기차를 타고 집에까지 오면서 내내 엄마만 생각했다.
오직 엄마만.
앞으로는 돌아가실 때까지 나 혼자라도 꼭 자주 찾아뵈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엄마께는 한번도 말로도 글로도 못한 말을 가슴속으로 되뇌이며.
엄마! 정말 정말 사랑해요.
친정에서는 조부모 기일부터 아버지 엄마 생신, 우리들 생일까지 모두 양력으로 지낸다.
그래서 엄마생신은 항상 아이들 개학 후라 평일이면 챙겨드리지 못할 때가 많았다.
멀리 있다, 애들 어리다는 핑계로.
올해는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나 혼자 생신을 챙겨드리러 친정에 갔다.
하나뿐인 남동생은 울진에 살고있어 못 올게 뻔하다.
'마음만 있으면 올케라도 잠깐 다녀가면 될텐데...'하고 동생내외가 못마땅했는데 엄마말씀을 들어보니 울진에서 대구까지는 버스로는 당일 왕복이 되지 않는 거리란다.
더욱이 동생이 수년째 고3담임을 맡고 있으니 평일이면 시간내기가 더욱 힘들어 지난해와 올해는 아버지 기일까지 엄마가 울진에 가셔서 지냈다.
친정인 대구보다 여기서 훨씬 더 멀어서 난 당연히 못 갔고(이것도 나의 핑계밖에 되지 않겠지).
친정이 천주교 집안이라 제사래야 여타 유교적인 제사와는 거리가 있는
그저 기일일 뿐이지만 조부모 기일은 모든 친척이 다 모여야 하니 어쩔 수 없고
아버지 기일에 제주인 아들이 빠지는 게 엄마는 못내 섭섭하셨던 거다.
어쨌든 어제 오전에 집에서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서 무조건 수원역으로 향했다.
친정에 가서 시장보고 준비해도 되지만 엄마가 쓰시는 부엌이 내겐 좀 낯설기도 하고 엄마는 나의 그런 수고를 그냥 두고 볼 분이 아니다.
간다는 이야기를 미리 하면 엄마는 쌍수를 들고 못 오게 말리신다. 아들이건 딸이건.
그래서 말도 않고 내려간 것이다.
며칠째 내리던 비도 다행히 멎었고 표도 미리 예매하지 않았지만 평일이라 기차도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었다.
간단한 손가방 하나와 검정비닐 봉지 하나.
손가방 안에는 내 소지품이 들어 있고 검정비닐봉지 속에는 미역국(미처 식지 않아 수건으로 둘둘 말아 쌈), 김치, 마른반찬 몇 가지가 들어있다.
내 손으로 들고가야해서 많이 넣지는 못했지만 텅텅 소리가 나는 엄마의 냉장고를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하기까지 했다.
혼자서 밥해먹고 반찬준비하는게 더 성가시다며 아침만 커피를 곁들인 토스트를 드시고 나머지 두끼는 매식을 하시는 정말 신세대이신 우리엄마.
그러니 냉장고 속엔 식빵, 계란 등이 전부일 수밖에.
어쩌다 올케가 왔다가며 드시라고 사넣어두는 고기며 다른 찬거리들은 며느리 몰래 딸인 내게 다 들려보내시는 엄마.
걱정하는 내게 도리어 "걱정 마라, 내 입맛대로 다 사먹는데 뭐가 걱정이고. 나 혼자 먹으려고 준비하면 돈도 훨씬 더 든다. 나는 이게 편하다"고 하시지만
원래 잘 드시지 않는 분이 챙겨주는 사람 없이 혼자 해 드시려니 '얼마나 서글퍼 저러실까' 싶어 가슴이 아프다.
아직 사지 멀쩡한데 왜 아들 내외에게 짐되느냐며 한사코 혼자 계신다니 자식도 어쩔 수가 없다.
내가 며느리라 해도 속으로는 오시지 않는 시어머니가 좋을 테니 이게 겉과 속이 다른 딸과 며느리의 차이인가?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초록의 풍경들이 가끔씩 내 상념을 방해하기도 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혼자 엄마 생각을 많이 한 시간이었다.
남편과 함께 차로 다니다보니 잘 몰랐는데 기차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리면서 참 대구가 많이도 변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 인생의 2/3를 여기서 지낸 곳인데 이리도 낯설다니 변화의 속도가 세월의 무게보다 갑절은 더한 느낌이 들었다.
어두컴컴한 시간에 대문을 열고 들어서며 "엄마"라고 크게 불렀다.
꿈인지 생신지 "이게 누고?"하시면서 깜짝 놀라시는 엄마.
엄마를 부르는 내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이슬이 내리는 걸 참느라 혼났다.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시면서도 사위, 외손들 걱정에 "왜 왔느냐"고 오히려 역정까지 내시는 엄마.
'내가 당신 속을 모를 줄 알고?'
내 생각대로 엄만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시켜놓으신 중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짜장면을 시켜 먹었고 우리 두 모녀는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정말 얼마 만에 아니 결혼 후 거의 처음으로 엄마와 단둘이 밤을 지냈다.
따로 깔아주신다는 이부자리를 마다하고 한 이부자리에서 엄마 곁에 꼭 붙어 누웠다.
어릴 때 우리 삼남매는(큰 남동생은 이십년전 사고사) 서로 엄마 곁에 누우려고 밤마다 자리쟁탈전을 벌였다.
항상 맏이인 내가 두동생에게 엄마를 양보해야 했으니 그때 엄마 나이보다 더 늙은(?) 내가 지금에서야 아이처럼 엄마 곁에 달라붙어 누웠다.
엄마, 엄마, 울엄마....
밤새 이야기를 하다 엄마도 나도 어느새 잠이 들었다.
아침에 휴대폰 알람소리에 내가 먼저 깨려고 했는데 엄마가 먼저 깨셔서 벌써 아침밥을 하고 계셨다.
얼른 들어가시라고 하고선 엄마 아침상을 차렸다
준비해온 미역국에 몇 가지 반찬들.
너무 조촐한 상이었지만 엄마는 고맙다는 말씀을 연신 하시며 드신다.
우리 남매 식구에 엄마까지 겨우 열 명밖에 안 되는 식구가 한 자리에 못 모이다니, 엄마가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신다고....
목이 메어 밥이 넘어가질 않지만 내색도 하지 못하고 아침이 너무 일러 밥맛없다는 말로 몇 숟가락 못 떴다.
아마 엄마도 이런 나를 눈치채시고 겨우겨우 드셨으리라....
아침만 해 드리고 치워놓고 나는 다시 기차를 타기 위해 엄마와 작별을 나눴다.
'올 때는 반가운데 가는 뒷모습이 싫어 안 왔으면 하는데 또 안보면 보고 싶고...'
아버지 살아계실 때 부터 두 분이 늘 하시던 말씀.
이게 부모의 마음이다.
엄마도 나도 애써 명랑한 척 작별을 했지만 돌아 나오는 나도 들어가시는 엄마도 속으로 울었다.
이게 무슨 자식이람. 엄마 속을 끝까지 아프게 하는데...
다시 기차를 타고 집에까지 오면서 내내 엄마만 생각했다.
오직 엄마만.
앞으로는 돌아가실 때까지 나 혼자라도 꼭 자주 찾아뵈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엄마께는 한번도 말로도 글로도 못한 말을 가슴속으로 되뇌이며.
엄마! 정말 정말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