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친정엄마)♡

쵸코렛과 시험

bell-10 2002. 6. 27. 17:28
어제저녁 잔무처리를 하느라 야근중인데 전화가 울렸다.
아들녀석이었다.
언제 오느냐고 물을 줄 알았는데 의외의 주문을 한다.
"엄마, 오실 때 우유하고 쵸코렛 사오세요"

우유는 떨어질 때가 되었으니 이해가 되는데 갑자기 웬 쵸코렛?
준비물을 안 챙겨가거나 숙제를 빠뜨렸을 때
반 전체 아이들 먹일 사탕을 사오라는 것이 선생님의 벌이기에
또 뭔가 잘못을 했구나 싶어 소리부터 질렀다.

"너, 또 뭘 잘못했어!"
"잘못한 거 없어요"
"그럼 갑자기 쵸코렛은 왜?"
"쵸코렛을 먹으면 기억력이 좋아진데요"
"누가 그런 실없는 소리했어?"
"테레비에서요, 호기심 천국에서 그랬어요"

아들의 말을 듣다보니 내일이 기말고사 치는 날이었다.
워낙 공부와는 담쌓은 녀석이라 기대도 않지만
시험을 앞두고도 책 하나 들여다볼 생각을 않고 펑펑 놀기만 하기에
며칠 전 일침을 가했었다.

"그래, 어차피 모두 일등할 수는 없고 누군가는 꼴찌를 해야하는데
그렇게 공부하기 싫은 니가 친구들을 위해 꼴찌를 해야지 별수 있냐?
이왕이면 니네 반 친구들뿐만 아니라 니네 학교 5학년 전체 친구들에게
한번 봉사해보지 그러니?"

말해놓고 보니 에미가 참 가관이다 싶었지만 이미 말은 뱉어졌는데
조금이라도 자극을 받아야 할 아들녀석은 아무 반응이 없다.
그런 모습에 내 속만 부글부글 끓고 말았다.

그런데 녀석도 시험 날이 닥치니 걱정은 되었는지
기억력 운운하며 쵸코렛을 사달라는 것이다.

"이눔아, 공부를 해야 기억을 하고 말고 할게 있지,
공부는 하나도 안하고 쵸코렛만 먹는다고 돼!"
"그럼 우유만 사오세요"하고 전화를 끊는 아들.

아무튼 야근 후 늦은 시간에 집에 갔더니
아들녀석은 에미를 기다리다 지쳤는지 잠들어 있었다.
왠지 풀죽어 보이는 아들의 잠든 모습을 보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공부가 싫으면 어쩌겠니,,,
공부 잘한다고 나중에 잘 먹고 잘 사는 건 아닐 테니
그저 건강하게만 커다오'

시험날인 오늘 아침.
새벽같이 일어난 아들.
공부하기 위해서?
오,노우~~!!!
아침 일곱시 반부터 학교운동장에서 하는 축구교실에 참석하려고
초등생인 주제에 고등학교 다니는 제 누나와 같은 시간에 등교를 했다.

한시간 넘게 공 차고 난 뒤에 바로 시험을 치렀을 테니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