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子의 이름으로♣

영광스런(?) 고지서

bell-10 2002. 5. 31. 17:05
어떤 집은 남편 아닌 아내의 명의로 집도 사고 판다는데
우리는 집은 고사하고 전화기 한 대조차 내 명의로 되어 있지 않다.

젊었을 때는 별 생각 없이 지나갔지만 나이가 들어선 지
여자들이 집이 내 명의니, 차가 내 명의니, 전화기가 내 명의니 하는 소리를 들을 때면
가끔 헛살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세상
그깟 명의란 게 뭐 중요할까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달래본다.

이렇듯 집이고 뭐고 내 명의로 된게 하나도 없다보니
고지서 한 장 내 이름으로 받아본 적이 없는 내가
드디어 영광스럽게도 내 명의의 고지서 한 장을 받게 되었다.
다름 아닌 교통범칙금 납부고지서.

카메라로 찍히는 교통위반 범칙금은 자동차 명의자인 남편 앞으로 나오는데
(우리 집에 심심찮게 배달되는 범칙금 고지서는 모두 남편이 위반한 것이다)
교통경찰에게 적발되어 소위 말하는 스티커를 내 이름 석자 앞으로 발부 받았다.

편도 이차선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해야하는데 좌회전 차선은 차가 길게 늘어섰고
옆의 직진 및 우회전 차선이 조금 짧은 듯하여 살짝 그 뒤에 줄을 섰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좌회전하면서 바로 우회전을 해야 하는 곳.

신호가 바뀌어 막 좌회전을 신나게 하는데 교통경찰 몇 명이 차를 세우는 것이었다.
교통이 차를 세울 때까지도 뭐 때문에, 왜 차를 세우는지 전혀 감을 못 잡았으니
십년 운전경력이 웃을 일이었다.

영문도 모르고 왜 그러시느냐고 물었더니 경례를 착 붙이며 경찰이 하는 말이
"차선 위반을 하셨습니다, 면허증 주십시오."
직진 차선에서 좌회전을 했다는 것이었다.

순간 가슴이 콩닥 콩닥거렸지만 그래도 이래저래 들은 풍월은 있어
'미안하게 됐다, 초행길이라 잘 몰랐으니 한번만 봐달라,
면허증 보면 아시다시피 여기 사람이 아니다,,,,'
내가 생각해도 치사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사실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운전을 하기도 했었다.

거의 십여 분을 사정한 끝에 '이미 적발되었으니 범칙금 발부를 안 할 수는 없다,
싼 걸로 끊어주겠다, 원래는 4만원짜린데 2만원짜리로 끊어주겠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발급 받은 분홍색 스티커.
내 이름 석자가 선명히 적혀 있는 영광스런 고지서.
그래도 다행이다 싶어 2만원짜리는 어떤 위반에 대한 범칙금인지도 모른 채 돌아왔다.

사무실에 돌아와 고지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단횡단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아닌가.
차라리 차선 위반한 4만원짜리는 다른 사람도 다 이해할 사항이지만
도대체 무단횡단이 뭐람, 창피하게,,,,,

언젠가 어떤 이가 교통위반을 하고선 사정사정해서 싼 걸로 발급 받은 고지서에
침 뱉었다고 되어 있었다던데 그것보다는 나은 건가?
어쨌든 이제부터는 정말 조심조심, 잘 보고 다녀야지,,,,,,

월드컵을 치르는 선진 대한국민들이여, 안전운전 하십시다.
파이팅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