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친정엄마)♡

무늬만 수험생 엄마

bell-10 2000. 8. 3. 09:38
수능시험이 앞으로 백여 일 남았다.
고3인 큰 딸아이가 그 수능준비로 힘들어 하는 걸 보면서
우리의 교육이 가야할 방향이 과연 어떤게 최선인가 하는 의문이 문득 들곤 한다.

교육이 백년대계임은 모르지 않을 배웠다하는 높으신 양반들도
자주 변하는 우리의 교육정책에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의 이렇다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걸 보니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

그 덕에 우리의 아이들은 책의 무게에, 어려운 교육현실 여건에 짓눌려
한참 꿈과 희망을 펼쳐나갈 청소년기를 햇빛도 제대로 못쬐는 음지식물마냥 핼쓱하게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아이는 고3 다른 아이들처럼 새벽까지 공부하기는 커녕 시험때이든 평소에든 자정을 넘어 자본 적이 없는 아이다.
그렇다고 천재여서 한번 배운 것을 다 알아 그런 것도 아니고 그저 습관이 그러하다.

중3입시생 때도 마찬가지여서 마음을 졸여본 적이 있는 나는 이번엔 일찌감치 수험생 엄마이기를 포기한다고 선포하였다.
그 때 우리 딸이 하는 말이 "엄마, 제발 그 마음을 끝까지 가져요.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마시고"였다.
잔소리 안한다고 하다가도 보다못해 '공부' 잔소리하는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딸아이니 그런 소리가 나올 법도 했다.

그러나 이번엔 나도 큰 맘을 먹고 지금까지 잔소리를 안하고 있다.
엄마인 나보다도 장래 사회에 진출해야하는 딸 아이가 더 초조할 것은 분명하니까.

다른 아이들은 스트레스로 살이 더 붙는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는 마른 몸매가 더 말라 지금 하는 공부도 애처롭다.
이곳 학원에서 '사탐(사회탐구)'을 수강하면 수강료가 비싸다고 노량진까지 가서 듣는 딸 아이가 고맙고 애처롭다.
학교에서 하는 보충수업을 빼먹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혼자서 공부한답시고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도서관가는 그 성의가 놀랍다.
점심값이 만만찮아 싸주는 도시락을 둘러메고 가는 뒷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올해 수능은 재수생들이 대거 몰려 정말 힘들다는데...

다른 엄마들은 어느대학은 어떻다느니 고3선생님보다 더 정통한 소식을 말하고 있지만 난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모든 걸 딸 아이에게 미루고 있다.
내가 만약 신경을 쓰면 딸 아이는 더 부담을 느끼고 힘들어 할 지 모른다는 모성애 때문이 아니라 혹시 내가 귀찮아서가 아닐까 나자신이 의심스럽다.

무늬만 수험생 엄마인 난 그저 남은 백여 일동안 아이가 건강하기를 비는 수 밖에.
금지야, 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