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子의 이름으로♣
아들낳는 비법은 없다(?)
bell-10
2000. 7. 27. 14:20
첫 딸을 낳은 후 다음에는 아들 낳을 것 같았는데 둘째도 딸을 낳고나니 아들 낳을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딸딸 엄마가 되고 난 뒤에 주위를 보니 저와 같이 딸 둘인 엄마도 많더군요.
또 그들 대부분이 이다음에 아들 낳을 확신만 있으면 셋도 낳아보겠지만 또 딸일 것 같아 포기하고 산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생각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둘째가 세 살 정도 된 후부터 시부모님께서는 절 보실 때마다 은근히 세 번째 아들 낳기를 채근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른들 말씀에는 '네'하면 되지만 문제는 남편에게 있었습니다.
말로는 "요즘 셋 키우는 집이 어딨냐, 딸만 있는 게 더 좋다"고 하면서도 남의 아들 백일 갔다오던지 하면 '허 그놈 참' 한다던가 자기가 하겠다던 피임수술을 차일피일 미루는 등 무언의 반항(?)을 하곤 했습니다.
저 역시 능력도 없고 아들 낳을 자신도 없어 절대 낳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조카애를 보거나 하면 '낳을 수만 있다면...'하는 미련이 생기곤 했습니다.
엄마인 제가 여자이면서도 딸보다는 아들을 원하는 이런 아이러니가 우리의 남아선호사상을 더욱 부채질하게 된다는 걸 알지만 사람마음이 그렇더군요.
둘째 딸이 네 살 되던 무렵인 어느 날 회사에 다녀 온 남편이 "우리 회사 아무개가 이번에 아들 낳았는데 강남의 모병원에 가서 시키는 대로 해서 낳았대. 거기 가기만 하면 아들 낳도록 해준대"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아들을 원하면 저럴까 싶어 저도 시도를 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당시 안양에서 버스를 타고 사당에서 전철로 갈아탄 후 강남역에서 내려 걸어서 홍모 병원까지는 왕복 세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맨 처음에는 남편이 데려다 주었는데 그 병원 대기실에서 여고졸업후 거의 15년만에 처음 만나는 동창을 만났습니다.
잠실 쪽에서 약국 하는 친구였는데 역시 딸 둘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약사도 올 정도면 이 병원에 다니면 아들은 문제없이 낳겠구나 싶더군요.
처음 만난 의사 역시 장담을 했고요.
한 달에 두 번 배란일 맞추어 병원을 다녔고 병원에서 준 책자에 있는 대로 음식조절은 물론 아들을 낳기 위한 갖은 노력을 다 했습니다.
마음먹으면 임신이 가능했는데 스트레스 때문인 지 6개월이 지나도 임신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원하던 임신이 된 것같아 기대에 부풀어 병원엘 갔더니 의사가 하는 말이 "아들인 지 아닌 지 검사 못하는 거 모르느냐?"며 오리발을 내미는 게 아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하라는 대로만 하면 아들 낳게 해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선생님만 믿었는데 그러시면 어떡해요"라고 해봤지만 누구 콩밥먹게 하려고 하느냐면서 '나 몰라라' 하더군요.
그 당시 한창 태아성별검사를 못하게 하던 때였고 어떤 의사는 그 일로 구속까지 되던 때였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들이 아니면 낳지 않으려는 모진 결심을 했던 때라 뱃속에 든 아이의 성별을 알아보려는 저의 노력이 그때 시작되었습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요?
알려고 하니까 길은 있더군요.
그렇게 단속을 해도 쉬쉬하며 융모막검사, 초음파검사, 양수검사 등을 해주는 병원이 있었고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한의원의 비방(임신초기 한약을 먹으면 딸은 생리로 흐르고 아들은 착상이 된다는)하며 정말 안 가본 곳이 없었습니다.
용하다는 병원까지 다니며 임신한 터라 아들일 것 같아서 검사결과를 믿지 못하고 최종적으로 양수검사까지 했습니다.
검사 결과를 다음날 전화통보 받았는데 '아들이 아닙니다'도 아닌 '결과가 나쁩니다' 그 한마디였습니다.
그때의 심정은 정말 무어라고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또 딸을 낳을 수 없어서 중절 수술을 하기로 마음먹고 병원을 찾아간 날 따라 온 남편은 아무 말도 안 했고 수술대 위에 누워서 그 동안 들인 노력을 생각하니 참으로 허망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남편이 이미 생겨 난 생명을 어떻게 없애느냐, 딸이라도 좋으니 낳자는 한마디만 해주었더라면...
왜 여자인 내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걸까.....
수술 후 다신 이런 짓은 않겠다고 맹세한 제가 13개월 후 똑같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꼭 같은 전철을 밟은 후 결과가 역시 안 좋아서.
전 정말 모질고 나쁜 여자입니다.
두 번이나 같은 일을 반복한 후 그때서야 제 남편은 제 건강을 염려한 듯 회복실에 누운 제 손을 붙들고 다시는 아일 갖지말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집에 와서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포기한 걸 보여주려면 당장 정관수술을 받고 오라고요.
하지만 미련이 남은 남편은 차일피일 또 미루었고 결국은 생각지도 않게 원하던 아들을 얻었답니다.
아들을 낳고 나니까 제게 말도 않고 바로 정관수술을 받은 남편.
정말 아들이 뭔지.
하여튼 우리 부부는 아무도 못 말리는 사람들입니다.

딸딸 엄마가 되고 난 뒤에 주위를 보니 저와 같이 딸 둘인 엄마도 많더군요.
또 그들 대부분이 이다음에 아들 낳을 확신만 있으면 셋도 낳아보겠지만 또 딸일 것 같아 포기하고 산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생각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둘째가 세 살 정도 된 후부터 시부모님께서는 절 보실 때마다 은근히 세 번째 아들 낳기를 채근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른들 말씀에는 '네'하면 되지만 문제는 남편에게 있었습니다.
말로는 "요즘 셋 키우는 집이 어딨냐, 딸만 있는 게 더 좋다"고 하면서도 남의 아들 백일 갔다오던지 하면 '허 그놈 참' 한다던가 자기가 하겠다던 피임수술을 차일피일 미루는 등 무언의 반항(?)을 하곤 했습니다.
저 역시 능력도 없고 아들 낳을 자신도 없어 절대 낳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조카애를 보거나 하면 '낳을 수만 있다면...'하는 미련이 생기곤 했습니다.
엄마인 제가 여자이면서도 딸보다는 아들을 원하는 이런 아이러니가 우리의 남아선호사상을 더욱 부채질하게 된다는 걸 알지만 사람마음이 그렇더군요.
둘째 딸이 네 살 되던 무렵인 어느 날 회사에 다녀 온 남편이 "우리 회사 아무개가 이번에 아들 낳았는데 강남의 모병원에 가서 시키는 대로 해서 낳았대. 거기 가기만 하면 아들 낳도록 해준대"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아들을 원하면 저럴까 싶어 저도 시도를 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당시 안양에서 버스를 타고 사당에서 전철로 갈아탄 후 강남역에서 내려 걸어서 홍모 병원까지는 왕복 세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맨 처음에는 남편이 데려다 주었는데 그 병원 대기실에서 여고졸업후 거의 15년만에 처음 만나는 동창을 만났습니다.
잠실 쪽에서 약국 하는 친구였는데 역시 딸 둘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약사도 올 정도면 이 병원에 다니면 아들은 문제없이 낳겠구나 싶더군요.
처음 만난 의사 역시 장담을 했고요.
한 달에 두 번 배란일 맞추어 병원을 다녔고 병원에서 준 책자에 있는 대로 음식조절은 물론 아들을 낳기 위한 갖은 노력을 다 했습니다.
마음먹으면 임신이 가능했는데 스트레스 때문인 지 6개월이 지나도 임신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원하던 임신이 된 것같아 기대에 부풀어 병원엘 갔더니 의사가 하는 말이 "아들인 지 아닌 지 검사 못하는 거 모르느냐?"며 오리발을 내미는 게 아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하라는 대로만 하면 아들 낳게 해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선생님만 믿었는데 그러시면 어떡해요"라고 해봤지만 누구 콩밥먹게 하려고 하느냐면서 '나 몰라라' 하더군요.
그 당시 한창 태아성별검사를 못하게 하던 때였고 어떤 의사는 그 일로 구속까지 되던 때였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들이 아니면 낳지 않으려는 모진 결심을 했던 때라 뱃속에 든 아이의 성별을 알아보려는 저의 노력이 그때 시작되었습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요?
알려고 하니까 길은 있더군요.
그렇게 단속을 해도 쉬쉬하며 융모막검사, 초음파검사, 양수검사 등을 해주는 병원이 있었고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한의원의 비방(임신초기 한약을 먹으면 딸은 생리로 흐르고 아들은 착상이 된다는)하며 정말 안 가본 곳이 없었습니다.
용하다는 병원까지 다니며 임신한 터라 아들일 것 같아서 검사결과를 믿지 못하고 최종적으로 양수검사까지 했습니다.
검사 결과를 다음날 전화통보 받았는데 '아들이 아닙니다'도 아닌 '결과가 나쁩니다' 그 한마디였습니다.
그때의 심정은 정말 무어라고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또 딸을 낳을 수 없어서 중절 수술을 하기로 마음먹고 병원을 찾아간 날 따라 온 남편은 아무 말도 안 했고 수술대 위에 누워서 그 동안 들인 노력을 생각하니 참으로 허망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남편이 이미 생겨 난 생명을 어떻게 없애느냐, 딸이라도 좋으니 낳자는 한마디만 해주었더라면...
왜 여자인 내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걸까.....
수술 후 다신 이런 짓은 않겠다고 맹세한 제가 13개월 후 똑같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꼭 같은 전철을 밟은 후 결과가 역시 안 좋아서.
전 정말 모질고 나쁜 여자입니다.
두 번이나 같은 일을 반복한 후 그때서야 제 남편은 제 건강을 염려한 듯 회복실에 누운 제 손을 붙들고 다시는 아일 갖지말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집에 와서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포기한 걸 보여주려면 당장 정관수술을 받고 오라고요.
하지만 미련이 남은 남편은 차일피일 또 미루었고 결국은 생각지도 않게 원하던 아들을 얻었답니다.
아들을 낳고 나니까 제게 말도 않고 바로 정관수술을 받은 남편.
정말 아들이 뭔지.
하여튼 우리 부부는 아무도 못 말리는 사람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