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l-10 2000. 7. 24. 10:21
아파트 앞 큰길을 건너 500미터 정도 걸어가면
삼림욕장 입구가 나타납니다.
청계산 끝자락에 위치한 야트마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체육공원이라고 이름붙은 쉼터가 나옵니다.
말이 체육공윈이지 조금 평평한 곳에 체육시설은
허리 돌리는 기구-그것도 한쪽발판은 망가진-한 가지뿐이고
벤치가 하나 있습니다.

여기서 더 올라가면 청계산 매봉으로도,
청계사 절로도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집에서 출발하여 이곳까지 올랐다 내려와 다시 집에 도착하는데
딱 한시간 남짓 소요되어 가끔 가벼운 운동 삼아 찾는 곳입니다.

며칠전 남편은 지방 가고 없었고
방학이라 집에 있는 아들과 둘이서 이곳을 오르기로 했습니다.
삼림욕장까지 이르는 길가에 자란 풀들과,
논에서 한창 자라는 벼, 밭에 심어져 있는 갖가지 작물,
집집마다 담장에 흐드러지게 둘러 처진 꽃들을 보며
휘파람까지 불어가며 발걸음도 가볍게 걸어갔습니다.

가는 도중에 아들이 길가에 자라는 갖가지 풀이름을 물어오는데
아뿔싸, 세상에 제가 알고 대답해 줄 수 있는
풀이름 꽃이름이 거의 없는 게 아닙니까?
기껏해야 아들도 알고 있는 강아지풀, 클로버, 질경이.....
도무지 아들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밭에 심어져 있는 옥수수며, 고구마, 콩, 파, 배추 등
농작물은 주부라서인지 대부분 알 수가 있었는데
담장에 자라는 꽃이며 우리풀 이름은 깜깜한
무식한 엄마가 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우리 아들은요,
벼를 보고 부추라고 말해 배꼽을 잡았답니다.
그 엄마에 그 아들인 거죠.

그 뿐 아니라 산을 오르며 주위를 둘러보니
이름 모를 나무들이 빽빽한 데 아는 거라고는
소나무, 아카시아, 상수리....
그 동안 남편과 산을 몇 번 다니며 무심히 보았던 나무들이
그날 따라 유심히 봐졌지만 본다고 이름이 알아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집에 식물도감. 동물도감이란 책이 있어
가끔 그 책을 본 기억이 있는데
지금 저의 집에는 그런 책이 없습니다.
위로 두딸을 키우면서도 크게 필요하다고 느껴보지도 않았고요.
그저 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이름 정도만 외우면 되는
지금의 교육방법에 문제가 있는 건 지
무심한 부모인 제게 문제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큰일은 큰일이더군요.

요즘은 학교마다 자연관찰학습장이 있다고 들었지만
아이들에게 과연 얼마만한 효과가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아이들을 공부시키느라 학원으로만 내몰았지
자연과 접촉하며 생활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어른들이 주지 않은 건 아닌 지 반성도 해봤습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산에 심어져 있는 나무마다
이름표를 붙여놓는 방법도 있겠죠.
이름 있는 산이나 공원에는
이름표 단 나무들도 있는 걸 보기도 했습니다.

점점 자연과 멀어져가는 도회지의 삶이 어른들은 물론
우리 아이들의 정서까지 메마르게 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때묻지 않은 아이들은 자연과 친해지기가 쉬운데도
어른들이 기회를 박탈하는 건 아닌지요.

저부터도 딸 둘을 키우면서 바깥에서 놀다 흙이라도 묻혀오면
현관 더럽힌다고 짜증을 부리기도 했고
운동장의 모래를 손에 묻히면 질색을 하며 털어 낸 엄마입니다.
아들이 맨 처음 구슬이라며 가져온 쥐며느리(맞나?)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 지 모릅니다.

그런 것들이 자연과 친해지는 방법인데도
엄마인 제가 말렸던 거죠.
뒤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아들과 함께
가끔씩 자연공부를 해볼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