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l-10 2002. 4. 2. 07:32
5학년이 된 우리 아들.
드디어 기록(?)을 세웠다.
공부와는 담을 쌓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설마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는 영어 빵점이란 대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며칠 전에는 수학 40점을 맞아 와서 당당하게 사인 해달라고 조르기에
"에구, 아무리 그렇지만 40점이 뭐냐, 반도 못 맞혔잖아?"
하면서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았다.

틀린 문제 풀어보면서도 제가 공부 못한 건 아무 상관이 없고
오로지 엄마에게 머리 쥐어 박힌 것만 억울해 입이 퉁퉁 부어있던 아들.

서너달 전 제 입으로 영어를 배우고 싶다기에 어쩐 일인가 싶어하면서
한자를 하던 구몬에서 영어도 같이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보니 제자신도 제 영어실력에 위기감을 느꼈던 것.
스스로 배우겠다는 소리를 한 그 영어의 어려움이 실제로 나타난 것이다.

영어 열 문제를 몽땅 틀려 온 아들.
틀린 문제 10번 쓰고 부모님 사인 받아오기가 숙제였다.
숙제를 했다며 코앞에 공책을 들이대는 아들.

글씨가 엉망인 거는 예상했던 일이지만
이건 순전히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는 꼴이다.
단어만이 아니라 짧은 문장도 있었는데
어디를 띄어써야 하는지도 모를뿐더러 제대로 읽지도 못하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뜻도 당연히 모를 수밖에.

3학년부터 영어를 배웠으니 벌써 2년 넘게 배웠다는 게
공부시간에 얼마나 떠들고 산만하게 지냈는지 읽지도 못하니
정말 어이가 없다.

그 아들을 붙잡고 '사인을 못 해주겠으니 다시 써와라'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겨우 띄어쓰기나 글자 모양은 되게 했는데 문제는 읽고 뜻 알기.
몇 번이나 읽히고, 뜻이 뭔지 말하게 하고, 눈감고 철자 외우게 하면서
영어 열 문제를 가지고 한시간 이상 모자가 씨름을 했다.

그래도 ABCD는 다 쓰고 읽을 줄 안다는 게 다행이라며 자위하는 한심한 에미.
저, 요즘 학부모 맞나요?